경기도가 권력 분점 성격의 ‘연정’(聯政)을 들고 정치권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여당 출신의 도지사와 경기도의회 다수당을 차지한 야당, 이들이 추천한 사회통합부지사가 손잡고 협치(協治)를 통해 도정을 운영해 보겠다는 것이다.

연정이란 ‘연합정치’의 준말로 둘 이상의 정당이나 단체의 연합 또는 그 대표들로 구성된 조직이 연합해 정치를 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 11월 24일 야당의 사회통합부지사 선출에 이어 2015년도 경기도 예산안에 연정의 기틀을 반영한 여야 정책합의 사항이 다수 반영되면서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는 물론 한국 정치사상 처음 시도되는 ‘경기도 연합정치’는 본궤도에 오를 모든 채비를 갖추게 됐다.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정치실험인 ‘연정’이 어느 정도 성과를 도출해 내기 위해 앞으로 넘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짚어봤다. <편집자 주>

남경필 지사는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연정을 공약으로 앞세워 당선됐다.

국내 정치에서는 낯선 정치모델인 연정에 대해 남 지사는 “경기도의회 양당과 경기도가 머리를 맞대고 서로 협력하는 정치혁신이자 새 정치”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타협은 실종되고 갈등만 증폭되는 정치 상황 속에서 사회 전체의 분열과 갈등은 심해졌다. 때문에 남 지사의 연정은 ‘싸우지 말고 협력하라’는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새로운 시도이자 도전으로 정의된다. 비록 지방정부지만 서로 다른 정치세력이 타협과 협력을 통해 상생하며 도정을 함께 꾸려 나가려는 시도는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경기도에서 연정이 순항하면 타 시·도는 물론 시·군·구로도 협치와 상생의 기류가 확산될 수 있다.

# 연정의 출발선…여야 정책 협의
남 지사는 당선인 시절이던 지난해 6월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 연정을 제안했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은 사회통합부지사(옛 정무부지사) 인사권을 야당에 넘기기로 한 남 지사의 연정 제안에 대해 ‘여야 정책협의’부터 하자는 역제안을 내걸었다. 야당 부지사 제안을 받으려면 진정성 확인과 명분 확보가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이로 인해 여야 경기도당위원장을 비롯해 국회의원, 도의회 여야 대표의원 등이 참여하는 ‘경기연정 여야 정책협의회’가 꾸려졌고 5차례 회의를 거친 끝에 야당의 주요 정책이 대거 반영된 정책합의문이 지난해 8월 확정됐다.

   
 

연정의 첫 결실인 이 합의문에는 도의회 다수석을 차지한 야당이 요구하던 생활임금 지원과 도 산하 공공기관장에 대한 인사청문회 실시는 물론, 남 지사의 주요 공약 실현과 관련된 사항도 다수 포함됐다.

실제 도의회는 정책합의 실현을 위해 지난해 9월 도의회, 경기도시공사, 경기문화재단, 경기개발연구원, 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 4개 기관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실시했고 이 과정에서 2명의 후보가 낙마하는 ‘이슈’도 발생했다.

이 같은 정책합의문 작성이나 인사청문회 역시 우리나라 지방자치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 사회통합부지사 추천 갈등…연정의 첫 고비
남 지사는 취임 이후 과거 정무부지사의 이름을 사회통합부지사로 바꾸고 새정치연합에 인사 추천을 제안했다.

사회통합부지사는 도의 보건복지국·환경국·여성가족국 3개 국과 경기복지재단 등 6개 도 산하기관을 관장하도록 했다. 여기에 기존 정무 역할을 수행하는 대외협력담당관도 배치했다. 이는 관련 부서 공무원 1천700여 명에 대한 인사권과 4조4천여억 원의 예산을 다루는 막강한 자리다.

하지만 도의회 야당 소속 도의원들은 이 같은 남 지사의 제안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상당수의 의원이 남 지사가 연정을 제안한 진의(眞意)를 의심했다. 남 지사가 자신의 정치적 ‘체급’을 높이고 연정을 리더십의 성공사례로 삼기 위해 제안했다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급기야 지난해 8월 새정치연합 도의원들은 남 지사가 제안한 사회통합부지사 인사 추천에 대한 투표를 벌였고 수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회통합부지사 인사 추천을 받아들이는 순간 야당의 기능과 역할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남 지사와 도의회 새정치연합 대표단의 물밑 협상 끝에 지난해 10월 사회통합부지사 인사 추천을 당론으로 최종 결정했고, 도의회 새정치연합은 11월 24일 이기우 전 국회의원을 야당 몫 부지사로 선출했다.
남 지사는 “대한민국 정치의 미래, ‘넥스트(Next) 정치’의 시작인 연합정치가 오늘 큰 진전을 이뤘다”고 소회를 밝혔고, 새정치연합 측은 “우리 정치가 상생과 협력을 통해 민생을 보살펴야 한다는 바람이 연정의 근거가 됐다”고 설명했다.

# 여야 ‘새해 예산 빅딜’ 기초된 연정…나아갈 방향은
지난해 12월 24일 도의회에서 통과된 새해 예산안은 여야 정책합의문을 통해 합의된 야당의 정책과 남 지사의 핵심 사업 추진 예산이 대거 반영됐다.
특히 야당의 핵심 정책인 ‘무상급식’과 관련, 도는 내년부터 첫 직접 예산 지원에 나서게 된다.

   
 
빅파이 프로젝트와 따복마을 조성 등 남 지사의 주요 공약사업도 연정의 큰 틀 속에서 야당의 반대 목소리를 잠재우고 예산편성에 성공했다.

때문에 새해부터 ‘경기 연정’은 실제 도정 운영 궤도와 함께할 모든 채비를 갖췄지만 아직 성공 여부는 속단하기 힘들다.

협치의 모범 사례를 보여 준다면 화합하고 상생하는 새로운 정치 모델을 만들 수도 있지만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 독일처럼 연정이 법제화돼 있거나 정치문화로 정착돼 있지 않고 남 지사의 의지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연정의 토대가 부실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렇다.

연정의 파트너인 새정치연합과 상호 신뢰가 깨졌을 때 어떠한 안전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도 한계다.

때문에 적지 않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진짜 도전은 이제부터라는 게 중론이다.

의원내각제에서 과반 의석을 얻기 위해 이뤄지는 일반적인 연정과 달리 직선제로 뽑은 도지사가 도정을 책임지는 현 구도에서 연정이 어떤 식으로 구현될지 아직도 의문부호를 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실상의 양당제인 우리 정치 구도 하에서 선택의 여지를 좁게 만드는 두 당의 연합에 대해 유권자들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도 예상하기 힘들다.

2015년 새해부터 사실상 ‘시즌2’에 돌입하는 ‘경기 연정’ 체제 하에서 도와 사회통합부지사 관계에 마찰이 일고, 도의회 여야 간 이념과 정책을 둘러싼 또 다른 ‘싸움’이 일어난다면 연정은 ‘퇴보’라는 딱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남 지사가 도의회와 예산편성권까지 나눠 갖겠다고 밝힌 가운데 여당의 고민인 도 세수 부족 문제 조율과 복지 확대라는 야당의 기본 정책 방향을 어떻게 접목시키느냐도 당장 풀어야 할 과제다.

이에 대해 남 지사는 “연정은 전인미답의 길이라 오래 걸리고 진통도 많겠지만 도 집행부와 도의회 간 소통을 통해 한국 정치 역사상 최초로 여야 정책합의를 이뤄 냈고 사회통합부지사를 탄생시켰다”며 “연정 합의에 따라 정책 연속성이 보장된다면 순풍에 돛 단 듯이 도정이 원활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