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 새해 벽두부터 비리 재벌 죄수들에 대한 사면·가석방이 추진되고 있어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2일 열린 청와대 2015 신년인사회에서 “기업인들이 사기를 회복해서 위기를 극복하도록 정치권에서 도와야 할 시기”라고 말해 감옥생활을 하고 있는 비리 기업인들에 대한 가석방을 에둘러 요청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누차에 걸쳐 수감 중인 기업인 가석방을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하여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미래의 국가경제를 고려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가석방을 요청하고 있어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국민 정서는 안중에도 없는 이러한 일련의 비리 재벌 죄수를 감옥으로부터 꺼내려는 시도가 성공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아무리 법에 의한 사면이나 가석방이라 할지라도 국민의 뜻과 동떨어진 통치행위라면 그것은 옳지 못한 것이다.

더욱 웃지 못할 일은 청와대 측이 “가석방 추진은 ‘법무부 장관의 고유 권한’”이라며 공을 넘겼다 한다.

 우리의 정부 형태가 대통령중심제임에도 부처 장관의 권한이기 때문에 나는 모른다는 식의 청와대 참모들이다. 지부상소((持斧上疏) 한 번 올리는 비서관 하나 없는 청와대다. 대통령 참모들의 시각이 이 정도라면 남은 임기를 걱정치 않을 수 없다.

기업인만 사면·가석방하는 모양새가 안 좋아 보이는지 ‘생계형 사범 포함’을 운운하고 있다 하니 더욱 가관이다. 대통령의 사면이든, 법무부 장관의 가석방이든 그 권한의 행사는 국민이 납득이 가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권한 남용이다.

우리 헌법은 제79조에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라고 명문화해 대통령에게 사면권을 주고 있다. 이어 형법에서도 제72조는 가석방의 요건에서 “징역 또는 금고의 집행 중에 있는 자가 그 행상이 양호하여 개전의 정이 현저한 때에는 무기에 있어서는 20년, 유기에 있어서는 형기의 3분의 1을 경과한 후 행정처분으로 가석방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면과 가석방의 사전적 풀이는 여기서 약한다. 다만 죄 지은 자가 남은 형기를 마치지 않고 출소하는 것이란 점에 있어서는 두 가지가 마찬가지다. 법적 해석은 차치하고라도 국민 대다수가 인용(認容)하는 정도는 돼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국내 여론이 곱지 못하다. 최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소위 ‘땅콩 회항 사건’을 놓고 국민 대다수의 흥분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재소 중인 특정 재벌 죄수 회장 가석방에 대해 여야 정치인은 말할 것도 없고 유례없이 경제단체장까지 나서고 있으나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경제 활성화를 빌미삼은 정·재계의 재벌 죄수들에 대한 사면·가석방 추진은 ‘감옥으로부터의 탈출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냉랭한 국민 정서 저항에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재벌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은 터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온데간데없는 작금의 우리 재벌들이다. 우선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다.

이미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할 대로 당했다. 한 몰지각한 재벌 2세의 분별 없는 행동으로 국격(國格)이 실추되더니 이번에는 또다시 난데없는 재벌 죄수 방면 추진으로 외신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한국에서의 죄 지어 감옥에 간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사면·가석방 추진과 관련, ‘재벌 집착증’이라고까지 혹평을 가했다. 정곡을 찌른 정문일침(頂門一鍼)에 유구무언이다.

법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 헌법 제11조는 “①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②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라고 아로새기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법 앞에 평등하지 않고 특수계급이 존재하고 있는 사회다. 이를 부인할 이는 없을 줄 안다. 진정 법은 존귀한 신분에게는 적용되지 않는가(法不可於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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