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의 중심에 서 왔던 기호일보가 2015년 창사 40주년을 맞아 1975년부터 2014년까지 인천 문화계의 변천사를 돌아봤다.

1975년 중앙극장 개관 등 동인천을 중심으로 한 극장문화가 전성기를 누리며, 또 8월 30일부터 9월 8일까지 인천 제물포화랑에서는 추사(秋史) 김정희 선생 이래 최고의 서예가로 꼽히는 검여(劍如) 유희강의 인천 귀향 전시회가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당시 문화예술의 주류는 서울이었고 인천은 변방에 불과했다.

40년이 지난 인천 문화계는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세상이 몰라볼 정도로 변했기 때문이다.

20곳이 넘던 단일관 위주의 영화관이 사라지고 1999년부터 복합영화관이 등장하더니 이제는 단순히 영화 상영을 넘어 쇼핑 등 온갖 부대시설을 갖춘 종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또 지난 한 해 동안 많은 전시회, 콘서트 등의 문화행사가 인천에서 열리면서 양적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편집자 주>

# 문학
인천의 최초 순문예 잡지인 1927년 「습작시대」 창간에 이어 1976년 「기서문화」도 간행됐고, 2000년을 전후로 적지 않은 문예지들이 새로 나왔다.

▲ 인천시립박물관 대보름날 달집 태우기 행사.

인천문인협회가 1991년 발행한 「학산문학」, 1993년 창간된 순수 문예지인 「리토피아」, 1998년 인천작가회의의 발족과 함께 기관지로 창간된 「작가들」 등이 인천 문학의 얼굴로 지역의 문학적 가치를 담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인천과 관련한 최근 문학작품으로는 김중미의 「괭이부리말아이들」, 이세기 시인의 「먹염바다」, 박일환 시인의 「배다리의 밤」 등이 인천의 서정과 시대상황을 표현한 대표 작품으로 꼽힌다.

40년간 단행본 발간은 줄고 있고 이러한 패러다임은 전국적인 추세와 궤를 같이한다. 종이책 읽기가 스마트폰, 인터넷 등에 밀려 급속히 위축돼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1970년대 40여 곳이 성업 중이던 인천 책방거리는 점차 아련한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갔다. 현재 책방 수는 5곳까지 줄었으나 다행히도 이곳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문학행사가 늘고 있는 게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다. 문학을 음악 등과 결합시켜 함께 즐기는 문학행사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문학기행, 북콘서트 등 외연을 넓히는 데 지역 도서관들의 공이 가장 컸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인천과 문학’이란 주제로 열린 인천작가회의의 표현처럼 ‘향토주의와 탈향토주의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란 고민이 여전히 인천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작가들의 중론이다.

‘2015년 세계 책의 수도, 인천’과 관련해 문학행사가 대폭 증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천 문학계 관계자들은 지역 독서문화 조성과 함께 출판서적문화 부흥, 명물 배다리 서점가 활성화 등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 음악
인천 음악계의 아이러니는 지역대학에 음대가 없으면서도 비교적 다채로운 음악활동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다른 도시처럼 대학교수와 대학 중심이 아닌 음악단체 중심으로 시민과 소통하는 음악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인천의 상징인 ‘인천시립교향악단’과 ‘인천시립합창단’이 그 중심 역할을 했다.

1957년 발족한 인천애호가협회 교향악단이 1960년 인천필하모니 관현악단으로 이어지고 1966년 창단된 인천시립교향악단의 모체가 됐다. 2010년 영입된 금난새 예술감독이 찾아가는 음악회 등을 열며 저변 확

▲ 인천시립교향악단.
대에 크게 기여했다.

1995년 윤학원 교수를 상임지휘자로 맞이한 시립합창단도 한마디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1997년 ‘나뮈르 세계합창제’에 초청돼 3천여 명의 지휘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극찬을 받는 등 이후 한국 합창계에서 두각을 보였다.

음악단체들의 창단과 활동은 늘고 있다. 인천남성합창단(1971년), 인천청소년교향악단(1985년), 인음교향악단(1993년) 등이 생겨나 인천 음악의 꽃을 피우고 있다.

하지만 2014년 상반기에 터진 세월호 참사로 음악회 등이 취소 또는 연기돼 쓴맛을 봤다. 또 인천 음악사에 큰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았던 두 음악감독(금난새·윤학원)이 지휘봉을 놓았다. 2015년 이들의 공백을 어떻게 메워 낼지가 관심사다.

또 그간 인천 음악계가 줄기차게 지적받아 온 ‘창작활동이 빈약하다’는 점도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인천의 국악활동은 1989년 인천국악관현악(전 미추홀국악단) 창단과 함께 새얼문화재단이 1993년 선보인 ‘국악의 밤’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얻은 상태다. 최근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는 퓨전음악회 등을 표방한 신생 연주단체들의 활동도 눈길을 끌고 있다. 국악과 대중음악, 클래식을 결합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연극
1980년대 후반 인천에는 6곳의 소극장이 있었다. 1978년 인천시 중구 경동에서 문을 연 ‘돌체’를 비롯한 소극장 전성시대는 1990년 한국 최초의 시립극단인 ‘인천시립극단’의 창단으로까지 이어진다.

2010년 이후 인천지역 연극과 뮤지컬 공연은 재공연을 포함해 300회 이상에 달할 정도로 늘고 있는 추세이다.

하지만 공연의 대부분은 공공공간에서 진행됐다. 민간공간에서의 공연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지역 극단의 유지가 어렵다는 방증이다.

현재 ‘돌체’만이 남아 있을 정도로 연극 제작 풍토가 척박하다. 최근 민간극장 ‘다락’이 개관과 함께 극단을 창단하는 등 연극시장이 조금씩이나마 확대되고 있다.

   
 

인천지역 민간극장에 대한 지원과 함께 공공극장들의 서울 극단 유명 작품에 대한 쏠림 현상은 두고두고 풀어야 할 숙제로 지적된다.

# 미술
1970년대 후반 서울의 현대미술 운동에 참여하고 있던 인천 연고의 작가들이 ‘현대미술상황’ 그룹을 형성했고, 현실참여적 활동을 모색하는 그룹 ‘지평’도 생겨나 1980년대 인천 미술계를 주도했다.

이 외 한국화 그룹인 ‘일수회(1974년)’, ‘해랍회(1989년)’, ‘수렴과 발산(1990년)’, ‘인천미술인협회(1995년)’ 등 새로운 그룹의 창립이 이어지면서 미술의 폭을 넓혀 줬다.

최근 인천문화재단, 부평아트센터, 인천시립박물관 등이 연이은 기획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전시회가 증가하고 있는 양상이다.

최근 미술계 활성화를 위해 지역 기관들의 공동 프로젝트 등도 선보이고 있는데, 신진 작가들을 발굴하고 인천의 지역문제를 화두로 내건 전시로 호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인천 미술계가 숙원사업으로 2009년부터 추진해 왔던 인천시립미술관 건립사업은 현재 기약조차 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국 광역시 중 시립미술관이 없는 도시는 인천이 유일하다.

# 총평 : 고동희(50)부평아트센터 관장

   
 

인천 문화계의 중심인 인천문화재단이 역할이 중요하다.

문화예술계를 포함해 각계의 노력으로 출범한 인천문화재단이 지난 10년 동안 지원기관으로서 노력을 짚어보고,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론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2014년은 인천 문화예술계의 기대가 컸던 해였다. 인천아시아경기대회라는 대규모 국제행사를 열면서 개·폐회식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에 인천의 문화예술이 큰 몫을 감당하리라는 기대였다. 그러나 인천의 문화예술을 두드러지게 내세우지 못하고 마무리된 점이 안타깝다.

인천 문화계의 향후 40년을 전망하기에 앞서 당장 2015년도 내다보기 힘들다. 인천시가 재정 상황을 이유로 문화예술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함으로써 지역 문화예술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우려된다. 인천의 문화예술이 인천의 도시가치를 확대한다는 인식의 공유가 필요하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