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소리산타령의 명맥을 잇고 있는 예인(藝人)으로서 많은 제자를 길러내고 싶습니다.”
그런 열정으로 자식처럼 가르친 유치원생부터 예술대 학생 등 제자들이 지난해 12월 10일 인천계양문화회관에서 열린 ‘제10회 최숙희 명창 국악한마당’에 몰려들었다.

최숙희 명창은 이날 제자 30여 명과 함께 경기·서도지방을 중심으로 한 선소리산타령을 열창해 화려한 무대를 선보였다.

선소리는 우리 전통음악 가운데 가장 유희적이고 놀이적인 요소가 강한 음악으로 흥도 돋우는 소리로 잘 알려져 있다.

11일 인천시 계양구 최숙희국악연수원에서 만난 최숙희 명창은 “흥이 많은 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최 명창은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국악을 배우기 위해 신혼 초인 26살에 무작정 국악교습소를 찾아간 것이 나의 인생을 바꿔 놨다”며 소리에 입문한 일화를 들려줬다.

이때 평생의 스승이자 은인인 황용주 명창을 만났다. 1998년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소암(韶菴) 황용주 명창은 선소리산타령의 계보를 잇는 천상의 소리꾼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최 명창은 아직도 틈만 나면 황용주 선생을 찾아가 소리를 배운다.

그는 “전통 소리를 30년 배웠지만 59년의 인생을 바친 황 선생님의 소리를 들으면 초심을 지킬 수 있다”고 겸손해했다.

‘전통음악 계승’과 ‘후학 양성’을 강조한 황용주 선생을 따라 최 명창 역시 인천지역 전통음악 발전에 애쓰고 있다. 그래서 시작한 게 ‘인천아리랑’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인천아리랑’은 인천의 부두 노동자들이 불렀던 노동요이자 일제시대 항일민요이다. 최 명창은 전통 가사에 나름 곡을 붙여 공연 때마다 무대에 올리면서 인천 음악을 지켜간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또 ‘후학 양성’을 위해 15년 전 인천에 국악원을 세웠다. 하지만 국악을 배우려는 학생이 많지 않아 마음이 늘 무겁다.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소리를 소개하기 위해 학교 등 여러 곳을 직접 찾아가기도 한다.
이것도 쉽지 않다. 구성진 소리를 내려면 4∼5년이 걸리는데, 학생들에게 전수시킬 수 있을 정도로 지원을 해 주는 곳은 드물기 때문이다. 그가 전통예술 교육과 유아교육 통합모델로 1999년 설립된 서울국악유치원을 부러워하는 이유다.

최 명창은 “방과후학교 등에서 소리에 재능 있는 아이들을 꽤 발견한다”며 “아이마다 제각기 다른 재능과 소질을 찾아내 키워 주는 것이 진짜 교육”이라며 국악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말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