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욕하면서도 본다’는 드라마가 있다. 흔히 ‘막장 드라마’라 칭하는 작품들이다. 이런 류의 드라마의 공통점을 꼽자면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사용돼 지나치게 뻔한 캐릭터 및 이야기 전개가 갑작스러운 극적 전환과 함께 상식적으로 생각될 수도 없는 자극적인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는 드라마를 뜻한다.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이 빠르게 몰아치는 극단적인 상황과 속도감은 시청자들에게 드라마의 상황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비판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다.

황당한 사건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시청자 또한 상식을 벗어난 전개가 주는 충격과 파괴력에 무기력하게 압도될 뿐이다. 할 수 있는 감상평이래 봐야 ‘완전 막장이다’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자극적인 드라마는 21세기의 소산물이 아니다. 이전 시대에도 있어 왔고,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모른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바람에 쓴 편지’ 또한 표면적으로 봤을 때에는 일일 아침드라마적 이야기와 별 차이 없어 보이는 작품이다.

그러나 분명히 다른 지점이 있다. 더글러스 서크 감독은 싸구려 치정극의 구조 속에 놀랍도록 냉철한 사회비판적 시각을 녹여내고 있다.

카일은 석유업으로 성공한 재벌가의 상속인이지만 아버지의 신뢰를 못 받고 있다. 오히려 그의 친구인 미치가 아버지의 신임을 받고 있다. 평범한 가정 출신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카일과 단짝으로 지낸 미치는 성실하고 유능하며 강인한 성품을 지녔다.

친형제처럼 지내던 이들은 운명의 장난처럼 한 여인을 동시에 사랑하게 된다. 카일의 적극적인 구애 앞에 미치는 마음을 숨긴 채 이들의 결혼을 묵묵히 지켜본다. 한편, 카일의 여동생 메릴리는 누구보다 빨리 미치의 속마음을 간파한다. 사실 그녀는 오랜 시간 미치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루시와 결혼한 카일은 이전과 달리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고 안정을 찾는다. 아이와 함께 더욱 완벽한 가정을 꾸리길 바랐던 카일은 어느 날 주치의에게서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된다. 자신의 건강상 이유로 임신이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된 카일은 한순간에 무너진 채 다시 술에 손을 댄다.

이에 이들의 행복했던 결혼생활도 막을 내리고 불화의 시기를 겪게 된다. 어김없이 술에 만취한 어느 날, 카일은 질투에 눈이 먼 여동생 메릴리의 거짓말에 아내를 의심하기에 이르고, 결국 이들의 삶은 돌아올 수 없는 파국을 향해 내딛게 된다.

1956년 발표된 영화 ‘바람에 쓴 편지’는 멜로드라마의 틀 속에서 전후 미국사회에 만연한 물질주의를 비판하는 작품으로, 물질적 풍요와 상반되는 그들의 정신적 빈곤이 가져온 비극적 파멸을 은유적으로 꼬집고 있다.

 돈으로 신분이 구분되는 미국사회의 계급적 구분과 단절, 퇴색되는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감독의 현실 인식은 오히려 멜로드라마라는 비정치적이며 통속적인 장치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정치적인 이유로 독일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서크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나치정부의 억압적이었던 독일사회만큼은 아닐지라도 냉전의 기류가 흐르던 1950~60년대의 미국사회도 정도의 차이는 있긴 하지만 억압적인 분위기는 비슷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정치적 이유로 망명했던 감독에게 노골적 표현의 사회비판적 영화를 제작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에 감독은 자신이 비판적으로 바라본 사회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대신 멜로드라마를 배경으로 배치해 자신만의 독특한 사회적 멜로드라마를 창조해 내기에 이른다.

물질적 풍요 안에 깃든 광기와 폭력, 그에 반해 처절할 정도로 빈곤한 정신적·정서적 가난은 바람에 쓴 편지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허망하고 덧없는 속삭임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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