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했다. 아이를 잘 가르쳐 달라고 맡긴 인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한 교사가 4살짜리 아이에게 무지막지한 폭행을 가하는 장면이 TV를 통해 보도되자 시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린아이가 교사가 휘두른 주먹에 맞고 날아가 방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모습이 반복돼 나오는 장면에서는 온 시민이 분노에 치를 떨었다.

사건이 보도되자마자 정치권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여야정(與野政)이 일제히 아동학대 방지책을 긴급 추진한다느니, 법안을 마련한다느니 하며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이 와중에서도 시민들이 역겨움을 느끼는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한 정치인은 어린이집을 방문, 천진난만한 어린이들과 눈을 맞추며 얘기하는 모습이 보도됐다.

 한 정치인의 모습에서 또 한 번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본다. 그 많은 날들에 무엇을 하고 일이 터질 때만 등장, ‘긴급대책…’ 운운하곤 하는 우리의 정치권이다.

일을 긴급하게 추진하다 보면 졸속으로 흐르기 쉽다. 경찰도 이제 와서 한 달 안으로 전국 어린이집과 유치원 실태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선다고 부산을 떨고 있다.

아동학대 사례가 이번이 처음이 아님에도 언제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이다. 지겹도록 들어온 대책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기껏 내놨다는 대책이 어린이 학대 사실이 확인되면 즉시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폐쇄한다’는 내용이 고작이다. 당장 아이를 어디에 맡기란 말인가. 이번에도 또 여지없이 보여 주고 있는 졸속행정의 단면이다.

드러난 사건은 어쩌면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우리를 분노케 한 것은 이번 송도 사건의 경우 폭행당한 아이에게 “왜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다 네 잘못이다.

집에 가서 얘기하면 더 혼날 줄 알아라”라고 말했다 한다. 어린이는 청순하다. 거짓말을 모른다. 유치원에서 주먹으로 맞고, 머리채를 잡히고, 목욕탕에 갇히면서도 집에 가서 말 한마디 못하는 우리 아이들이다. 토한 음식을 무릎으로 기어와서 다시 먹어야 하는 우리 아이들이다.

막상 CCTV가 없었더라면 이 모든 학대행위들이 증거 불충분이라 해 그냥 묻혀 지나갈 뻔한 사건들이라는 생각에 전율을 느낀다.

현재 전국의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CCTV 설치율은 20% 정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교사들의 인권문제를 들어 설치를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감시카메라가 없어서 당하는 어린이들의 인권을 먼저 생각해야 하겠다.

교사가 떳떳하다면 감시기기 유무가 무슨 문제이겠는가. 어린이 안전 사각지대는 없는지 살피고 살펴야 하겠다. 학대를 당하며 자란 아이는 두고두고 아픈 상처를 치유치 못하고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린다는 것이 심리전문가들의 얘기다. 부모 또한 마찬가지다. 한 아이와 가정의 불행이고, 사회·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라날 권리가 있다.

“▶어린이는 건전하게 태어나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 속에 자라야 한다. ▶어린이는 좋은 교육시설에서 개인의 능력과 소질에 따라 교육을 받아야 한다. ▶어린이는 즐겁고 유익한 놀이와 오락을 위한 시설과 공간을 제공받아야 한다. ▶어린이는 해로운 환경과 위험으로부터 먼저 보호되어야 한다. ▶어린이는 학대를 받거나 버림을 당해서는 안 되고…….” 이렇듯 우리는 단 한 구절에도 부족함이 없이 잘 다듬어진 미사여구로 구성된 ‘어린이 헌장’을 제정해 놓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모든 문구들은 지켜지지 않는 한갓 헛된 선언에 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 하나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다. 무슨 보육정책을 수립하고 아이 낳기 운동을 펼친다고 하는지 자괴감이 든다.

어린이 폭행사건들이 속속 신고·접수되고 있다. 3살짜리 어린이를 화장실에 가뒀다는 어린이집의 경우 “아이가 혼자 있고 싶어 그렇게 했다”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기가 막혀 할 말을 잊게 했다

. 오늘도 매 맞고, 불 꺼진 도깨비방에 갇히는 줄 알면서도 엄마에게 말 한마디 못하고 두려움에 떨며 노랑버스를 타는 우리 어린이들은 아닌지….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어린이는 신이 인간에 대하여 절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이 땅에 보낸 사신이다”라고 칭송했다. 어른임이 한없이 부끄러운 을미년 정월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