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식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평소 기호하는 음식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냉면과 뜨거운 음식으로 해장국을 내세운다. 냉면은 사철 즐기는 편으로 특히 겨울밤에 몸을 떨며 먹는 맛이 일품이다. 해장국은 휴일 아침에 주로 나가 구수한 맛을 즐긴다. 식성이 냉온(冷溫) 구별 없이 잡스럽다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여기 적은 이 두 음식은 모두 우리 인천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이었다. 굳이 “이었다”는 과거형 어미를 쓴 것은 이제 이런 음식들을 팔던 구옥들이 거의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아무튼 여기서 냉면이나 해장국이 인천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이었다’는 말이 곧 ‘인천 고유의 음식이었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20세기 초엽부터 1930년대에 이르는 시기 동안 당시 인천만의 독특한 여건 속에서 정형화(定型化)의 길을 걸어 외식 음식으로 일반화됐고, 급기야 ‘인천 냉면’이라는 향토적 명성이 서울 한량들에게까지 두루 퍼졌던 신화 같은 역사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무렵 인천에는 이른바 ‘제물포 드림’을 이루기 위해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많았다. 개항장의 각종 건축, 건설 공사, 축항 공사 등은 전국의 가난한 노역자, 부두노동자들을 불러 모았고 더불어 일제가 조선의 미곡 수탈을 목적으로 개설한 미두취인소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경향(京鄕)의 대소 지주들을 끌어들였다.

미두취인소는 오늘날의 증권거래소 같은 곳으로 반복창이나 조준호 같은 행운아들의 성공사례가 전국으로 퍼져 나가 각지 사람들의 제물포행을 자극했던 것이다.

이 같은 유입 인구의 증가는 고(故) 신태범(愼兌範)박사의 지적대로, 필연적으로 인천의 숙박업과 음식업의 번창을 촉진시켰다. 바로 이때 등장한 대표적인 외식 음식 메뉴가 냉면과 해장국, 그리고 추탕 같은 것들이었다.

추탕은 아쉽게도 이제 완전히 절멸한 상태여서 인천식의 그 원형을 찾을 길이 없다. 냉면은 틀림없이 북에 고향을 둔 어떤 사람에 의해 인천에서 얼음을 넣어 여름에도 먹을 수 있는 외식 품목이 됐을 것이고, 해장국이나 추탕도 인천 사람이었든 이주민이었든 그 어떤 머리 있는 사람에 의해 정형(定型)을 갖춘 매식(買食) 메뉴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이 무렵까지 전국 어디에도 인천처럼 왕성하게 외식업이 발전했던 지역은 없었다. 그러니까 냉면이나 해장국의 원형은 당시 인천 유입 인구의 증가와 그에 따른 외식산업의 발전이라는 필연적인 경로를 거쳐 완성됐고, 그것이 급기야 전국으로 퍼져 나가 오늘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그렇더라도 여기서 갑자기 냉면이나 해장국이 인천의 향토음식이라고 주장하는 소이를 독자들은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의도가 아니다. 이 음식들이 곧 인천의 정체(正體)와 통한다는 그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그 한 실례를 눈으로 확인했다. 20여 년 넘게 드나드는 동구 송림동의 한 단골 해장국집에서의 일이다. 일요일 이른 시간에는 썩 붐비지 않던 곳에 난데없는 긴 대열이 늘어선 것이다. 워낙 줄이 길어 그날은 포기하고 그 다음 주에 다시 갔으나 여전히 길게 사람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는 인내를 발휘해 줄의 맨 끝에 섰다. 그러자 앞의 아주머니들이 아저씨들도 TV를 보고 왔느냐고 물어 왔다. 전에 없던 이 대열은 결국 TV 전파로 생긴 것이었다.

한 TV가 송림동의 이름 없는 해장국집을 일약 스타로 만든 것이다. 아주머니들은 새벽에 서울에서 내려왔다고 털어놓았다.

그 순간, 문득 근 한 세기 가까운 인천 향토음식 문화의 살아있는 정체를 보는 듯했다. 그리고 이것이 내 고향 인천의 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볼거리가 적다면, 먹을거리 인천을 내세우면 되는 것이다.

인천에 먹을거리 자산은 실로 많다. 해장국을 먹는 내내 이것들을 다시 살리는 길, 우선 관이 할 일을 생각해 봤다. ‘관에서는 오직 이들 먹을거리의 위생 상태만 참견하면 그만이다.

상호가 없으면 없는 대로, 낡은 구옥이면 구옥인 대로, 협소하면 협소한 대로, 관에서는 이런 노포(老鋪)들을 찾아내 무슨 매체로든 홍보해 줄 일이다.

 한데 모아 책이라도 엮어 전국 군 단위, 면 단위까지 뿌려 광고해 주는 일이다. 개항 한 세기 역사책을 들추는 것만이 인천의 정체 확인은 아니다. ‘맛있는 집’이라는 팻말이나 덩그러니 붙여 주는 일은 더욱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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