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옥엽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2015년 새해가 시작됐지만 해묵은 과제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우울하게 한다. 근래 부쩍 더 잦아진 사회적 부적응자들의 병적인 행태는 불만 표출을 불특정 다수에 대한 위해(危害)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 모녀 살해’나 ‘인질사건’에서 보듯이 가족의 해체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 배경적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우리 사회가 그동안 너무 물질적 풍요와 산업화, 경제개발에 치중했던 탓에 외형적 성장에만 의미를 뒀고, 사회공동체 구성원의 정신적 지표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물질적 성공이 곧 사회적 위상을 대변하는 것으로만 여겨 정신적 지표를 구태의연한 이야기로 치부해 버렸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최근 보육교사가 자신의 정체성과 본분을 잊고 보육의 대상인 어린이를 내동댕이치는 현상은 이성을 상실한 표류하는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

이제라도 대국민 차원에서의 인간성 회복을 위한 정신적 지표 설정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옳은 것을 과감히 추진해 갈 수 있는 진정한 ‘용기(勇氣)’의 사례를 통해 이 시대 인성교육의 정신적 지표를 생각해 본다.

역사서의 한 전형인 기전체(紀傳體)는 왕에 관련된 사실들을 기록한 본기(本紀)와 제도나 풍속을 알 수 있는 각종 지(誌) 외에 신하들에 대한 포폄(褒貶)을 정리한 열전(列傳)으로 구성돼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에는 명신, 학자, 충의, 반역 등에 관련된 69명의 인물들이 기록돼 있다.

편수관이었던 김부식은 열전을 통해 유교적 충효관, 인간의 도리와 의리를 강조하고 있다. 이 열전에는 진정한 ‘용기’를 보여 주는 이야기가 몇 편 있는데 그 하나가 ‘강수(强首)’라는 인물에 대한 것이다.

강수(?~692)는 설총(薛聰), 최치원(崔致遠)과 함께 신라의 3대 문장가로 꼽힌다. 육두품 출신이라는 신분적 한계 속에서도 높은 유교적 교양과 학식 그리고 뛰어난 문장력으로 신라 사회에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그는 중원경(충주) 사량(沙梁) 출신으로 그 어머니가 꿈에 뿔이 있는 사람을 보고 임신해 낳았는데 머리 뒤쪽에 불거진 뼈가 있었다.

당시 사람들이 생김새가 범상치 않아 기이한 인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태종 무열왕 때 당나라 사신이 전해 온 국서에 매우 어려운 곳이 많았는데 무열왕은 강수를 불러 물어봤고, 강수는 국서를 한 번 읽어 보고 막히는 곳 없이 정확히 해석해 냈다.

무열왕은 크게 기뻐서 “왜 내가 일찍 이런 사람과 만나지 못했는가”라 말하며 그의 머리뼈 생김새가 특이해 ‘강수(强首)’라는 이름을 직접 지어줬다.

강수가 일찍이 부곡의 대장장이 딸과 정을 통해 좋아하는 마음이 매우 돈독했는데, 부모가 고을의 처녀들 가운데 용모와 행실이 좋은 자를 중매해 아내로 삼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강수는 두 번 장가들 수 없다고 해 사양했다.

아버지가 미천한 여자를 배우자로 삼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노해 말하자 가난하고 천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도를 배우고도 실행하지 않는 것이 정말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면서 “일찍이 옛 사람의 말에 ‘고생을 같이 했던 아내는 쫓아내지 아니하고(糟糠之妻 不下堂), 빈천한 시절의 친구는 잊어서는 안 된다(貧賤之交 不可忘)’고 들었으니, 천한 아내라고 해서 차마 버릴 수는 없습니다”라고 했다.

신문왕 때에 강수가 죽자 왕이 곡식 100섬을 내려줬는데 그의 아내는 사양하며, “저는 미천한 몸으로 입고 먹는 것을 남편에게 의지하다 보니 나라의 은혜를 많이 입었습니다.

지금은 이미 홀몸이 되었는데 어찌 감히 다시 두터운 대우를 받겠습니까?”하고 끝내 받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비록 시대와 환경이 달랐던 1천300년 전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인간의 도리와 의리를 실행한 진정한 용기를 지닌 남편과 아내의 전형(典型)을 보여 주고 있어 욕심과 불신이 팽배한 이 시대 우리에게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2015년, 국가적으로는 1945년 광복 이후 ‘대한민국 70년’의 발전을 되새기는 해가 되고, 인천시로서는 미군정기와 경기도 인천시, 그리고 직할시를 거쳐 1995년 광역시 행정을 펼친 지 20년이 되는 시점이다.

미래를 향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전환점에 서서 이 시대의 정신적 지표를 올곧은 ‘용기’의 발현에서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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