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철학자인 마르틴 하이데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습니다. 프라이부르크대학의 총장까지 지낸 이 실존주의 철학자의 대표 저서 「언어에 관한 대화」에서 이렇게 주장한 것입니다.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이야기입니다만, 우리가 하는 말에는 삶에 대한 철학과 태도가 담겨 있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언어의 본질은 존재 자체의 현성하는 본질을 간직하는 것이고, 다시 말해 존재의 진리를 간직함으로써 언어의 본질이 구현된다는 의미입니다.

즉, 내가 하는 말이 곧 ‘나’라는 존재입니다. 말에는 그 사람의 가치관이 담겨 있고 그것은 곧 인격을 나타냅니다.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의 사령탑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어록이 인기입니다. 비록 아시안컵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여러 가지로 부족한 상황에서도 선수들을 잘 이끌고 매 경기 후회 없는 승부를 펼친 리더십 덕분일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월드컵 4강 신화의 영웅 거스 히딩크 감독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제가 맡고 있는 프로그램에 일주일에 한 번씩 기영노 스포츠평론가와 인터뷰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얼마 전 방송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히딩크 감독과 슈틸리케 감독은 공통점이 많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결정적일 때 ‘말’을 통해서도 선수단을 독려해 왔다는 것입니다. ‘언어 플레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한일 월드컵을 1년여 앞둔 지난 2001년 5월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프랑스에 0-5로 진 뒤 “창피하지 않다. 좋은 경험이었다. 선수들은 투쟁심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체코에 역시 0-5로 대패한 뒤에도 “꼭 이긴다는 잔인한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때론 사고뭉치가 필요한데 아무도 악역을 떠맡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었습니다.

 한일 월드컵 폴란드전 승리로 한국 월드컵 본선 사상 첫 승을 안긴 뒤에도 히딩크 감독은 여전히 들뜨지 않았던 모습이었습니다.

그의 명언 중 백미인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 발언은 한국의 4강 신화에 기폭제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영웅주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할 뿐이다.” 역시 히딩크 감독의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외국인 명장 슈틸리케 감독. 그는 성과가 나와도 흥분하지 않았고 선수들이 잘했어도 당근만 주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1승에 일희일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역시 선수들을 다루고 승리하는 법을 알고 있는 감독이었습니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대표팀이 승승장구하자 언론과 여론은 내심 우승을 기대했지만 “우승해도 한국 축구는 더 노력하고 발전해야 한다”고 일갈했습니다.

대회기간 내내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려는 모습이 엿보였던 대목입니다. 슈틸리케 감독은 결승전이 끝나고 나서야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우리 선수들을 자랑스러워 해도 됩니다”라고 한국어로 말했습니다. 대회기간 감정을 절제하다 대회가 끝나자마자 칭찬을 아끼지 않는 그의 모습에선 감동마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 전문가들이 꼽는 장면이 있습니다. 한국이 0-1로 뒤진 아시안컵 결승전 후반이 끝나갈 무렵, 이정협 선수는 너무 지친 나머지 공중볼 다툼에서 위력을 보여 주지 못했습니다.

그 절체절명의 상황에 최후방 수비수 곽태휘 선수가 슈틸리케 감독을 향해 손으로 신호를 보냈습니다. 이정협은 지쳤으니 자신이 최전방으로 올라가서 공중볼 싸움을 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런 곽태휘의 요청에 슈틸리케 감독은 즉각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이정협을 빼고 곽태휘를 최전방 공격수로 올린 것입니다.

곽태휘는 적극적인 헤딩 싸움으로 공을 따내며 후반전 추가시간 손흥민 선수의 기적 같은 동점골을 이끌어 냈습니다. 전문가들은 “대표팀에 ‘수평적 문화’를 강조해 현장과 적극 소통한 슈틸리케 감독은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고 칭찬했습니다.

아시안컵 내내 슈틸리케 감독은 말 한마디가 지니는 힘을 잘 보여 줬습니다. ‘슈틸리케 어록’ 중 백미로 꼽히는 것이 대회 도중 이정협에게 건넨 한마디입니다.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무득점에 그친 그에게 슈틸리케 감독은 “넌 항상 하던 대로 편하게 부담 없이 해라. 잘하든 못하든 책임은 내가 진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에 자신감을 되찾은 이정협은 이라크와의 4강전에서 선제 결승골을 터뜨리며 그 믿음에 보답했습니다. 현장의 의견을 중시하는 ‘소통’과 선수들을 향한 애정 어린 ‘격려’가 제대로 힘을 발휘한 것입니다. 좋은 선수는 역시 좋은 감독이 만든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이제 하이데거의 말을 다시 인용하면 우리가 하는 말이 곧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상대방에게 비춰질까요? 오늘의 과제입니다. 슈틸리케 감독의 사례를 되돌아보고 본받을 점을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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