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장원 인천재능대학교 교수

 건축가 브르넬스키의 노력으로 보편화된 투시도법은 르네상스를 이끈 주역 가운데 하나이다. 평면 위에 3차원을 구현하는 투시도법을 이용해 화가는 생동감 넘치는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고, 건축가는 더욱 풍부한 공간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투시도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며, 기하학이나 공간지각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더 많은 정성을 기울여야 했다.

눈에 보이는 실제 모습을 형상화하기 위해서 색채를 표현하는 방법까지 학습해야 하는 어려움은 컴퓨터그래픽 프로그램의 등장으로 간단히 해결됐다. 요즘 건축을 배우는 학생들은 투시도 대신 그래픽 프로그램을 이용해 실제에 가까운 모습을 그려낸다.

더구나 최근에 등장한 3D프린터는 2차원 위에 3차원을 표현해야만 하는 공간적 한계를 허물어 버렸다. 초창기 3D프린터는 장난감 제작에나 사용되는 수준이었으나, 현재는 실생활을 넘어 의학 분야에서도 엄청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최근 영국에서는 2살 된 어린이의 심장 수술에 앞서 3D프린터로 만든 그 어린이의 모형 심장을 이용해 문제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3D프린터의 위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3차원 수치 모델이 실물 모형으로 만들어지고, 모형 재료 대신 음식 재료를 넣으면 오랜 동안 수련을 쌓은 전문요리사만이 만들 수 있는 멋진 요리도 집에서 만들 수 있도록 해 준다.

 최근에는 저렴한 비용으로 구입할 수 있는 3D펜이 등장해 일반인도 어려움 없이 종이가 아닌 허공에 3차원 입체를 그릴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이처럼 과학기술의 힘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일을 현실에 구현하도록 도와준다.

컴퓨터의 아버지라고 알려진 앨런 튜링은 ‘콜로서스’라는 기계를 만들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최고 수준의 전문가 수천 명이 풀어내지 못한 독일의 암호체계 ‘에니그마’를 허물고 연합군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컴퓨터 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많은 영역에서 사람을 대신하고 있다.

여기에 인터넷의 등장으로 책을 읽지 않아도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을 열었다. 이젠 일반인도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아 생소한 분야에서도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큰 어려움 없이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세상이다.

한마디로 과학기술의 발전이 전문가의 입지를 더욱 좁히는 일이 반복되고 있으며 그 정도는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 아주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뉴욕타임스’는 2011년 10월 22일자 기사로 ‘컴퓨터를 하지 않는 실리콘밸리 학교’라는 제목의 글을 다뤘다.

 이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고급 엔지니어 자녀의 상당수가 신체활동과 예술적 감성을 길러주기 위해 컴퓨터는 물론 특정한 형태를 가진 장난감조차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발도르프’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는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나이가 돼서야 활용 방법을 가르친다고 한다. 감성을 중시하는 자녀 교육은 자신의 자녀들은 아이폰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한 스마트폰의 창시자 스티브 잡스의 인터뷰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컴퓨터 시대를 이끌어 가는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인간의 기본적 학습 방법인 신체활동과 독서를 중요시하고 자녀들에게 감성을 키우는 교육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에게는 더 많은 창의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창의력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형성되는 후천적 재능이다.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창의적 사고력을 갖춘 인재가 적은 원인은 대입중심의 교육 방식에 있다.

초등학생은 물론 유치원 원아까지 입시교육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이다. 어릴 때는 감성중심의 교육이 필요하고, 학습자 스스로 공부의 필요성을 느낄 때 최고의 학습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적다.

그 이유는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뒤처질 것 같다는 걱정 때문이다. 입시중심의 교육시스템 아래에서 외치는 창의교육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입시중심의 교육을 넘어 창의적 사고력을 갖춘 인재 양성 시스템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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