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갈등이라는 요소를 내포할 때 더욱 흥미로워진다. 우리가 사는 일상에서야 갈등 없이 평탄하게 흘러가는 것을 가장 선호하겠지만, 허구적 이야기에서는 그렇지 않다.

남녀의 사랑을 그린 보편적인 이야기에서도 갈등은 언제나 극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 축에는 두 집안의 격렬한 반대가 클리세처럼 등장하곤 한다.

‘가문의 갈등으로 이루지 못한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라 하면 대부분 특정 작품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바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비록 청춘 남녀의 사랑이 해피엔딩으로 맺어지지는 못했으나, 이 작품은 전세계인의 마음에 사랑의 고전으로 남아 있다.

그런 만큼 이를 원형으로 새롭게 창작된 작품은 시대를 초월해 다양하게 존재한다. 오늘 소개하는 1961년작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뮤지컬 영화로 탄생한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16세기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20세기로 그 시대를 이전한 작품은,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속에서 미국 뉴욕 시로 구체화된다. 영화의 오프닝은 항공촬영을 통해 뉴욕 시가지를 보여 주며 등장한다.

화려한 외관과 높은 빌딩이 늘어선 맨해튼과는 달리, 슬럼화된 할렘 시가지의 숏은 이후 갈등의 원인으로 자리잡고 있는 사회문제를 자연스레 드러낸다.

뉴욕의 ‘웨스트 사이드’는 맨해튼 서부지역에 위치한 할렘지구로, 1940년대 이후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의 대량 이민으로 슬럼화가 가속화됐다. 이는 그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이탈리아계 이주민과의 마찰을 촉발하게 되는데, 바로 실업률 증가가 그 원인이었다.

경제적 원인이 빚어낸 두 집단의 갈등은 결국 계파를 형성해 다투게 된다. 그리고 그 비극의 중심에 토니와 마리아의 운명적 사랑이 싹트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세력 간 다툼은 결국 살인을 부르게 되고, 토니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이로써 두 사람의 사랑은 그 비극성만을 더한 채 끝을 맺게 되고, 두 집단은 자신들이 초래한 어리석고도 비참한 결과에 눈물을 흘린다.

미국 뮤지컬 음악의 거장인 스티브 손드하임과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과 현대무용의 거장 제롬 로빈스의 감각적 안무가 유기적으로 결합해 호평을 받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3년 뒤 동명 영화화됐다.

희망 없는 아메리칸 드림 속에 전쟁처럼 살아가는 뒷골목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신명 넘치는 뮤지컬 장르로 담아낸다는 것은 당시로서 실험적인 도전이었다.

뿐만 아니라 클래식에 기초를 둔 멜로디의 전개와 발레 동작을 빈민가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 대입한다는 것 자체가 보편적 인식에 역행하는 발생이었다.

그러나 원작 뮤지컬과 함께 동명 영화는 이를 놀랍도록 세련되게 소화해 냈으며, 그 결과 작품 속 뮤지컬적 요소들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예술의 경지로 승화했다는 평가를 오늘날까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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