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권홍 원광대 로스쿨 교수

 봄기운이 뚜렷해지면서 벌써 새로운 학년의 1학기가 시작될 때가 됐다. 학년이 올라가는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은 물론이고 초·중등학교를 포함한 모든 교육기관들이 분주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느 나라의 부모들도 비슷하겠지만, 교육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우리나라에서는 부모들의 일정이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의 일정에 따라 결정된다. 개학은 언제하고, 언제가 휴일인지, 그리고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방학인지에 따라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직장에서의 휴가나 여행 계획을 수립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학교의 자율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학교의 일정은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학교마다 다르게 정해지고 있다. 나름대로 고민하고 학부모들과 상의를 통해서 학사 일정을 정하겠지만, 학사 일정이 개별적으로 정해짐에 따라 겪게 되는 부모들의 어려움이 적지 않다.

첫째와 둘째가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지 않거나, 초등학교와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동시에 둔 부모들의 입장이 돼 보자.

예를 들어 올해 5월 4일이 어린이날 전의 월요일인데 어느 초등학교는 이날 수업이 없고 어느 초등학교 또는 중학교는 수업이 있다면 5월 2일부터 5일까지의 기간 동안 가족여행 같은 일정을 잡기 어렵게 된다. 이런 어려움은 맞벌이 부부에게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부부가 다니는 직장 상황에 따라 휴가 신청이 가능한데, 아이들의 학사 일정마저 통일되지 못해서 최악의 경우 아버지와 첫째 아이는 일정이 가능하고 어머니와 둘째 아이는 일정이 불가능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방학을 시작하는 날과 개학하는 날이 학교마다 서로 다르다는 것도 똑같은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방학기간이 길게는 1주일 이상 차이가 나는 학교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학연수, 학원 수강, 연수 또는 여행 등의 일정을 짜야 하는 부모들로서는 아주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학사 일정은 학교의 편의가 아니라, 부모와 학생들에게 사전에 학교의 일정을 알려 주고 부모와 학생들은 이를 기준으로 나름대로의 삶에 대한 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작성돼야 한다.

학부모와 학생의 편의가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인천의 많은 초등학교의 홈페이지에서 2015년의 학사 일정을 찾을 수가 없었다. 1년은커녕, 1학기의 학사 일정도 구경하기 힘들었다. 개학을 바로 코앞에 두고 있는데도 이런 상황이다.

캐나다는 교육청별로 1년 단위의 학사 일정을 학부모들은 물론이고 시의회의 교육위원회에 해당하는 시민의 대표 기관과 협의해서 작성하며, 이를 해당 학년이 시작하기 전에 모든 시민들에게 알려 준다.

학생들 또한 1년 단위의 다이어리를 지급받는다. 그 다이어리에는 수업이 없는 날, 과목별 과제 제출일 등 학교 일정들이 자세히 인쇄돼 있다. 호주는 이보다 더해서 2년의 학사 일정을 사전에 작성해 공표한다. 공표된 일정은 각 학교 또는 교육청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다.

학사 일정을 통일하고 사전에 알려 주는 것은 우리나라 학부모나 학생의 편익을 도모하는 것뿐 아니라, 우리나라에 유학을 오려는 외국인들 또한 유학에 대한 계획을 작성하고 항공 일정 등을 좀 더 효율적으로 잡을 수 있게 된다. 즉, 우리 교육의 국제화를 위해서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인천시교육청은 학부모들의 의견 수렴을 포함한 공론화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학사 일정의 통일 여부에 대해서는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교육청이나 학교의 입장이 아니라 학부모와 학생들의 입장에서 정책이 결정돼야 한다.

학사 일정의 통일은 많은 논의와 필요한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당장 결정이 어렵다 하더라도,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는 1월까지는 해당 연도의 학사 일정에 대한 정보가 학교의 홈페이지에 공개돼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언제부터 방학인지에 대한 학부모의 알권리가 보장되며, 학생들 또한 자기 삶에 대한 최소한의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끝으로 교육의 민주성, 자율성, 투명성은 거창한 가치나 이념 논쟁이 아니라 학부모와 학생에게 예측가능성을 보장해 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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