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생성과 소멸 과정에 존재하는 자연과 우주의 섭리를 들여다보니 이탈리아의 수학자 피보나치가 발견한 수열과 황금비율처럼 자연과 우주의 구조나 원리를 잘 설명하는 것은 없다고 봅니다. 예술가의 미학과 작품의 진정성도 자연과 우주의 원리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죠.”

인천시 십정동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난 차경진(52)조각가는 피보나치수열과 보로노이 다이어그램 등으로 수학과 철학 등을 넘나들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설명했다.

서울 덕원예고에서 드로잉을 가르치면서도 ‘텃밭 농사를 짓고 있는 작가’로 소개받고 진행한 대화의 내용은 신기하면서도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웠다.

“보로노이 원리대로 점에서 선으로 다시 면으로 이어지는 그물망 원리가 자연의 형태를 어마어마하게 잘 설명하죠. 그 원리를 학교에서 가르치고 학생들에게 사물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그려 보라고 합니다. 여기 보세요. 보로노이 원리를 알고 그린 학생의 그림과 아닌 그림의 차이점을 느껴 보세요.”

그런데 미술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바로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차이가 신기하게도 보였다.

“예술가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진실의 원리를 파헤쳐 그대로 드러내야 해요. 그런 노력과 진정성이 자연스럽게 작품으로 연결되는 거죠.”

비좁은 작업공간에서 대형 작품을 주로 만드는 그가 부딪치는 작품 보관 문제도 보로노이 다이어그램으로 술술 풀어냈다. 차 작가가 손끝으로 가리킨 대형 조각품들도 하나하나 뜯어 보니 사실은 평면으로 만든 여러 개 조각들의 결합품에 불과해 일종의 착시 현상에 속은 것이었다.

그를 만나기 전 차 작가를 추천한 여러 예술가의 평이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차 작가와의 대화가 끝날 무렵에는 자연현상의 예리한 관찰과 정확한 묘사를 통해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사실기법을 집대성한 이탈리아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난 느낌이 들 겁니다.”

사실 그랬다. 차 작가를 만나고서야 화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수학·해부학 등에도 깊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어렴풋이 이해가 됐다.

오랜 연구 끝에 이제야 자연의 이치를 알겠다는 차 작가는 오는 4월 25일 갤러리GO에서 ‘후납 쿠(Humb Ku)로의 여행’이란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마야족의 언어로 ‘우주의 중심’이란 뜻의 후납 쿠를 표현한 작품을 통해 ‘마음의 본성과 다르지 않는 우주로 돌아가 보자’란 의미를 표현해 보겠다는 그의 도전이다.

인천에서 17년간 살면서 작품전시회를 계속 열고 있는 그에게 어떤 고민이 있을까도 물어봤다.

“지역 예술가로서 살아남느냐 문제는 결국 개인의 예술성과 전략적인 기획력 등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후미진 곳에서도 진정성 있는 작품을 만든다면 사람들은 찾아오기 마련이죠.”
뭔가를 알아가는 과정이 행복하다는 차경진 조각가는 최근 한양사이버대학원에 진학, 디자인기획에 대해 늦깍이 공부를 시작했다.

 ‘보로노이 원리를 이용한 공간생성 연구’에 몰두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들을 선보여 국제 무대에 나서 보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