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먹을 갈아 새봄이 온 것을 축하하는 문구로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는 입춘첩(立春帖)을 써 붙인 지가 어저께 같은데 벌써 3월이다. 지난달은 여느 달보다 유독 2~3일이 짧은 달이어서 그런지 어느새 훌쩍 지나갔다.

오늘은 초·중·고교와 대학 등 각급 학교가 일제히 새 학기를 맞아 학생들이 첫 등교를 하는 날이다. 각 가정마다 자녀들이 푸른 꿈을 안고 초등학교에 입학했거나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교 등 상급 학교에 진학했다. 가정사 중에 큰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새 학년을 맞은 학생들에게 축하의 마음을 전하며, 모두에게 전도양양(前途洋洋)하기를 기원한다.

의당히 기뻐해야 할 일이기는 하나 전해오는 소식통들 모두가 희망의 전서구(傳書鳩)만은 아닌 것 같다. 자식들이 진학을 하고 대학을 졸업했는데도 축하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시민 가정들이다.

중·고교에 입학하는 학생을 둔 학부모들은 수십만 원에 달하는 교복을 학교가 실시하는 교복주관구매제에 따라 기존 교복을 물려 입을 수도 없다는 기이한 제도로 학기 초부터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가계를 울리며 학부모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게다가 자녀가 대학에 입학한 가정의 경우 자식이나 학부모 모두가 자랑스러워 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못하다 하니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대학 등록금이 수백만 원에서 1천만 원대에 이른다. 대학을 합격해 놓고도 학생이나 학부모 모두가 마음이 편하지 못하다. 학자금을 은행에서 대출받는다 해도 문제다. 대학생이 되자마자 곧바로 채무자가 되곤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잡지 못하면 대출금 상환이 어려워지게 된다. 이는 곧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게 된다.

‘부모님의 등골을 부서뜨린다’는 뜻으로 유행되고 있는 ‘등골브레이커’라는 씁쓸한 신조어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사회를 건강한 사회라 할 수는 없다. 오늘도 우리나라의 가계부채가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부실한 우리의 경제를 걱정치 않을 수 없다.

며칠 전 필자의 한 지인은 대학을 졸업한 자식이 수십 곳의 기업에 이력서를 내 봤지만 오라는 곳이 한 군데도 없어 걱정이 태산이라고 한탄하기도 해 마음이 아팠다.

그러잖아도 지난달 쏟아져 나온 수십만 명의 대졸자 상당수가 직장을 구하지 못해 실업 상태에 있다. 여기에 전년도 졸업 미취업자까지 합하면 그 수는 부지기수에 이른다.

이 같은 청년 대량실업 사태는 본인의 불행을 넘어 가정의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나아가 국가적으로도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고용 확대를 국정의 제1과제로 삼고 있다고 강조하곤 한다. 언제나 말뿐인 행정이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마무리되는 것이 없다. 국회 또한 민생법안의 시급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쟁에만 몰두하느라 나몰라라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민생 파탄’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시민들의 중론으로 들린다. 전혀 이상한 얘기만은 아닌 것 같다.

늘 하는 얘기지만 국민소득 2만~3만 달러를 구가하는 나라에다 경제규모 세계 10위권 진입을 앞두고 있는 나라라 하더라도 거리에 실업자가 넘쳐난다면 우리는 결코 잘사는 나라가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희망만을 이야기해야 한다. 절기상 겨우내 얼어붙었던 강도 풀린다는 우수(雨水)도 지났고, 나흘 있으면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이다.

청년들이야말로 우리의 희망이자 미래다. 청년들의 일자리가 없다면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예부터도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民以食爲天)’라 했다. 어려운 서민가계가 풀려야 진정 잘사는 사회다.

완전고용이야말로 우리의 이상이다. 이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보다 가까이는 다가갈 수 있다고 본다. 정부와 지자체는 고용 확대에 온 행정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일자리 창출이 그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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