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찬근 인천대학교 교수

 인천대학교에 부임한 지 21년째를 맞았다. 30대 말에 패기로 둥지를 틀었는데, 이제 남은 햇수가 한 자리인 싱글이 됐다. 골프에서 싱글은 올라서기를 뜻하지만, 대학에서 싱글은 내려놓기를 뜻한다. 그러나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게 반드시 나쁘지 않다. 초조함이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땅에서 교수는 특별한 지위를 누린다. 연봉이 매력적인 것은 아니지만 어디에서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나름 귀 기울임의 대상이 된다.

그런 사회적 위상 때문에 지나온 시절의 대부분은 사회적 담론과의 교제였다. 한국의 금융, 세계의 금융, 금융의 속성과 지배력, 끝없이 교차하는 금융위기 등 금융의 빛과 그림자에 대한 담론의 제기와 논쟁이 나를 사로잡았다.

 어쩌면 지구촌 한 구석에서 한 시대를 살다 가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나를 지배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영양상태의 불균형으로 혹은 근거 없는 고정관념과 성격장애로 어딘가 기형적이었던 내가 속한 전후세대와 달리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겐 번듯함이 있다. 체격과 옷차림 등 외관이 좋고 남녀를 대하는 시각, 세상을 바라보는 이데올로기가 덜 왜곡돼 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이들은 잃어버린 세대이다.

핵가족으로 귀하게 자라서 그런지, 고등학교 졸업자의 80% 이상이 대학에 들어와서인지, 아니면 해외 물을 먹은 교수들에게서 세련된 선진 이론을 공부한 탓인지 이들의 눈높이는 한껏 높다.

그래서 구세대와 달리 문화적 감수성에 더해 취미가 있고, 다양한 방식으로 휴식과 여가를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이들에게서 강한 의욕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영어로 말해 드라이브(drive), 즉 밀고 가는 추동력이 딸린다.

이들은 대학에 들어와 자유를 만끽하지만 그 시간은 잠깐이고, 사회 진출과 취업의 벽을 느끼면서 이들의 청춘은 주눅들어 간다. 급한 심정에 이런저런 자격증에 도전하거나 서둘러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하는데, 자잘한 스펙 쌓기로 취업시장을 돌파하는 것은 여의치 않다. 그래서 세상에 대한 원망이 싹트기도 한다.

세상이 키운 세상의 젊은이를 세상이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세상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졸속의 세계관이 형성될 수 있는 위태로운 지형이다. 차분히 생각해 봐야 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세계화·정보화로 인해 자본의 활동에 국적이 없게 됐다. 그래서 부가가치가 낮은 일은 개도국 저임금 인력에게 빠져나가고, 1인당 소득 2만 달러의 사회엔 번듯한 일자리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실패한 것이 아니고, 자본주의가 발전한 것이다.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스킬이다.

달리 뾰족한 해법이 없다. 지식기반사회가 요구하는 지식-스킬-태도를 갖춘 인재를 세상이 키워 내야 한다. 그리고 그 시험대가 돼야 하는 세대가 바로 오늘의 젊은이들이다.

 외관이 아니라 내용이 채워져야 한다. 국제적인 일터에 나가 영어로 심층의 의사소통을 하며 창의적으로 문제 해결의 방법을 찾아가는 기본기를 다져야 한다. 거기에 인간적인 매력과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이 더해져야 한다.

도대체 이 아찔한 과제를 누가 어떻게 챙길 것인가. 나는 이 시대의 대학에게 연구력 이상으로 교육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명, 한 명의 학생을 상대로 그들의 자존심을 자극해 잠재력을 일깨우는 섬세한 교육이 필요하다. 그래서 정년까지 불과 6년밖에 남지 않은 나는 분주하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