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덕우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지정학(地政學)이란 지리적 환경이 국가에 미치는 정치, 군사, 경제적인 영향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연구하는 학문이다. 한국이 대륙과 일본을 연결하는 교량적 위치에 있기 때문에 언제나 양국의 갈등에 휘말려들 소지가 있다는 설명도 이러한 이론에 바탕한 것이다.

 바다도시 인천이 한국 역사에서 갖는 지정학적인 입지는 서해안의 중심지역에 자리하고 있던 해양 관문이다.

주몽의 아들 비류가 동생 온조의 선택과는 달리 인천 미추홀을 수도로 정한 것도 2천여 년이 지난 오늘 인천이 명실상부한 한반도의 거대한 해양도시로, 또 국제적 물류중심지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라는 예지의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한국 역사에서 바다를 통한 중국과의 교류는 1천600여 년 전의 일로 인천의 능허대에서 ‘처음’으로 시작됐다. 고려시대에는 인천의 영종도에 경원정(慶源亭)이라는 객관을 세워 중국 사신을 접대했다.

인천에서 출발해 덕적도와 옹진반도를 거쳐 중국 산동반도의 등주에 이르는 항로가 개척됐는데, 인천이 교류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서해로 빠지는 한강 하류의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는 지리적인 조건과 함께 전통적인 해상활동의 중심지였기 때문이었다.

 1883년 인천이 자의 반 타의 반 부산·원산에 이어 개항됐지만 서울로 진입하는 최단거리라는 지리적 상황으로 인해 신문물은 인천을 통해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인천에는 서양과 일본의 근대적 기제들이 속속 건설됨으로써 한적했던 제물포가 조선의 ‘다문화 국제도시 인천’으로 변모하는 거대한 실험실이 됐다.

한국 역사에서의 ‘인천 최고·최초’도 100여 개에 달하고 있다. 외국인 상사(商社)가 최초로 인천에 지점을 설치한 것은 물론 손탁호텔보다 14년 앞선 ‘대불호텔’, 파고다공원보다 9년 앞선 ‘만국공원(현 자유공원)’, 경인철도, 동양 최대의 갑문시설 등이 인천에 조성됐다.

정미소를 비롯한 생필품 공장들이 운집하고 월미도를 풍치지구로 조성하면서 인천은 수도권 최대의 소비시장과 관광상품을 갖는 도시로 탈바꿈했다.

1883년 개항 당시 348명에 불과하던 인천의 일본인은 1910년 인천 총인구 3만2천395명 중 1만3천315명으로 ‘절반’에 육박했고, 일본인 중심의 항만도시이자 커다란 공업과 농업단지를 배후에 두는 산업도시로 그 모습을 바꾸게 됐다.

우월적 권리를 갖던 일본인의 억압과 수탈은 더욱 심해 갔고, 조선인의 노동 여건은 더욱 악화됐다. 인천지역사회에 통곡과 신음소리가 가득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정미소에서, 성냥공장에서의 노동자 투쟁이 애국운동으로 이어졌고 한용단을 비롯한 청년운동은 민주적 자치활동을 경험하게 해 광복 후 중앙과 인천에서 지도자격 인물을 배출했다.

인천의 앞바다는 병인·신미양요, 운요호사건, 청일·러일전쟁을 직접 경험했고 9·15인천상륙작전이 단행됐던 현장이었다.

6·25전쟁이 종식된 후 1954년 인천의 총 인구 26만2천268명 중 피난민이 7만4천366명으로, 월남한 동포들이 대거 정착해 ‘달동네’가 형성된 곳이기도 했다.

 1960·70년대에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거듭 추진되고 인천의 공단들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가 수출 위주로 전개됐다. 인천 내항의 도크 확장, 경인고속도로 건설, 경인전철 부설 등 각종 기간(基幹)시설이 확충되면서 인천시는 서울·부산·대구에 이어 4대 도시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 후 산업화의 후유증으로 심한 몸살을 겪어야 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순망치한(脣亡齒寒). 도시가 갖는 정서야 모두 다 다르겠지만 수도권 여타 도시의 발전은 인천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인천의 시련과 애환을 담보한 것이었다.

인천의 발전은 그야말로 희생과 포용과 기회의 땅으로 이뤄진 복잡한 구도 속에서 진행됐다. 그렇다고 해서 지난 희생의 역사에 대한 그 어떤 ‘보상’도 요구하지도 않았다. 인천은 지금 또 한 번 도약의 전환점에 서 있다.

인천의 가치와 소중함을 재인식해야 하고, 그간 위축된 인천인의 자긍심을 되찾아야 하는 과제도 있다. 오랜 세월 인천지역사회에 쌓여 온 역사적 토양은 인천의 지정학적 역할과 함께 시민의 애향심과 정체성 확립에 큰 도움이 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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