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기 인천대학교 외래교수

 사생활은 비밀을 토대로 성립한다. 인간과 달리 숨겨야 할 정보가 없는 동물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일을 행하지 않는다. 비밀을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물에게 애초부터 사생활이란 존재할 수 없다.

크고 작은 비밀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사생활은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런 까닭에 드러나거나 발각된 비밀은 당사자에게 마음의 상처와 정신적인 혼란을 야기시킨다. 인간 사이를 대등하고 우호적인 관계가 아닌, 바라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비대칭 관계로 전락시키는 시선은 권력의 표상이자 권력 행사의 도구로 작용하기 쉽다.

일부 연예인을 비롯해 각종 매체에 의도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내미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보는 주체는 강자이고 보여지는 객체는 약자다.

아주 특이한 성향이 아닌 한 인간은 보이는 쪽보다는 보는 쪽이기를 원한다. 그래서 자신의 사생활은 감추고 남의 사생활은 들여다볼 수 있는 위치에 서고자 애쓰고 경쟁한다.

관객이 어두운 곳에서 영화나 연극에 몰입하는 행위 역시 훔쳐 보기에 대한 쾌감과 강자에 대한 욕구의 발로다. 김영하의 소설 「퀴즈쇼」에서는 주인공이 들른 편의점에서 편의점 주인의 시선에 대해 주인공이 몹시 불쾌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보여지는 상대로서도 그렇지만 편의점 주인이 자신을 하찮은 존재로 바라본다고 여긴 것이다. 이런 생각에 주인공은 증오심에 가까운 분노를 느낀다.

그리고 이로 인해 약자로 전락한 자신의 처지에 대한 깊은 회의감에 빠져든다. 쳐다보는 게 기분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발생하는 살인이나 폭행사건의 기저에는 시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지하철에서 맞은편에 앉은 사람과 눈이 마주치는 것이 어색한 이유도 시선의 불편함 때문이다.

인간이 부나 정치 권력에 집착하는 것은 삶에 대한 안락과 자기 보호 이외에 시선 권력을 획득하고 장악하는 데에도 그 목적이 있다.

물론 인간은 시선 권력의 대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욕구 또한 집요하고 강하다. 영화 ‘트루먼 쇼’에서 트루먼이 결국 시청자들의 관음증을 충족시키는 주인공의 역할을 거부하고 죽음의 위험을 무릅쓴 채 일상으로 돌아오는 행위 또한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에서 주인공 로캉탱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시립박물관을 찾는다. 그곳은 그 도시 명사들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주인공은 그 초상화의 자신만만하고 오만한 시선 앞에서 갑자기 주눅이 들면서 자신의 처지가 초라하게 느껴진다.

과연 자신이 살아갈 가치가 있는 인간인지, 길가에 나뒹구는 하찮은 돌이나 풀과 같이 무가치하고 일상적으로 외면당하는 존재는 아닌지 혼란스러워한다.

 진짜 사람이 아닌 초상화의 가짜 시선조차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메두사는 머리카락이 모두 뱀인 괴물이다. 인간은 이 메두사 앞에 서면 모두 돌이 된다. 사르트르는 타인의 시선을 이 괴물에 비유했다.

CCTV가 각종 범죄를 예방하는 데 유용한 수단이 되고 있는 것과 사건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이 장치가 늘어나는 것만큼 강력범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는 자는 우월하고 보이는 자는 열등한 관계로 팽배한 사회야말로 불신과 불안이 만연한 갑을 사회이다.

사회의 안정과 활력은 개인의 사생활이 자유롭고 편안하며 개인의 비밀이 보장되고 보호되는 토대 위에서 강화되고 확대된다. 더불어 사회의 투명성도 여기에서 확보된다.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지 않을 수 있을 때 비로소 밝고 건전한 사회로 거듭날 수 있다. 따라서 임의적으로 시선 권력을 보유하거나 행사하는 행태를 막고 견제할 수 있어야 사회도 건강해진다.

공공의 안전을 위해서 물리적인 규제나 제약은 필요하다. 하지만 원하지 않는 시선을 거부할 수 있는 것도 개인의 중대한 권리라는 점 또한 간과하기 어렵다. 사회질서를 교란하고 문란케 하는 일탈행위의 근절이 개인의 사생활을 지키는 첩경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