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운 객원논설위원

 시대가 변해도 약자에 대한 폭력은 사라지지 않는가 보다. 우리 사회는 갑과 을의 관계로 계약과 행동이 강제되고 있다. 계약서 양식에도 ‘갑’과 ‘을’이 명시돼 있다.

그런 강제조항에서 ‘갑’은 항상 높은 위치, 권력을 행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나 단체를 말하고 있다. 모 항공사의 비행기 회항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었으며, 예전 우유 대리점과 본사와의 거래관계에서도 불공정 계약의 ‘갑’과 ‘을’의 문제였다.

하루아침에 착한 ‘갑’과 대등한 ‘을’을 기대하지도 믿지도 않는다. 다만 앞으로 좀 더 나아지고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뿐이다.

두 사건 모두 공정한 사회를 위해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됐었고 전문가의 진단과 처방이 있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법리적 해석과 논쟁만 무성할 뿐 그냥저냥 기억 속에서 가물거린다.

그런데 인천의 어린이집 폭력 사건은 국민의 공분(公憤)과 대통령까지도 관심을 갖는 대형 사건이었다. CCTV 설치가 최선의 방법인 것처럼 진행됐고, 원스트라이크 아웃제(한 번 아동학대가 있으면 어린이집을 폐쇄하는 정책)니, 교사들의 심리적 상태를 고려해야 하는 등등.

여기저기 학부모의 반응과 교육계, 정치계 할 것 없이 현장 방문과 재발 방지를 약속하면서 CCTV 설치는 당연한 것으로 세상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법사위를 통과하면서 어물쩡 로비 단체의 입김이 작용하고, 어린이집의 CCTV 설치는 교사의 사생활 침해, 설치비용의 문제 등의 이유로 하지 않아도 되는 법으로 변질됐다. 어린이집은 설치의무화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고, CCTV 설치업체는 한숨을 몰아쉬는 상황이 됐다.

참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과 안으로부터 올라오는 욕지거리를 담배로 달래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누가 감히(?) 국회의원들에게 갑질을 했을까? 당연히 다음 선거에 표를 가진 집단이 영향을 줬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언제쯤 우리 사회의 갑이 국민이고 시민일 수는 있을까? 그래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회복이라는 차원에서 지방자치제를 실시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들 또한 4년마다 ‘갑’이면서 ‘을’인 척하고 표를 구한다. 당선되면 ‘갑’이면서 언제나 ‘을’인 척한다. 그것을 감시하고 선도하는 것이 시민단체의 역할이며 사명이다.

어린이집 폭력 방지는 CCTV 설치가 만사는 아니었다. 왜 발생하는지 원인부터 진단해야 하는데, 언론과 정치권의 조급증이 본질을 보지 못하고 보여 주기에만 급급해서 알맹이 없는 결과를 제시한 것이다.

우선 어린이집 교사의 처우 문제를 고민했어야 한다. 처우는 열악하고 돌볼 아이들은 많은 상황을 간과한 것이다. 엄마도 종일 자기 아이와 지내면 짜증이 날 텐데, 교사가 많은 학생을 통제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고려했어야 한다. 그렇다고 폭력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아이마다 성격도 다르고 성향도 다른데, 적은 인원으로 수익을 위해 많은(?) 어린이를 받다 보니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또 하나는 부모가 돌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맞벌이를 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를 생각하는 전문가는 어디에도 없었다. 자기 자식의 문제라면 좀 더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안을 내놓았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하나나 둘인 자녀들을 과잉 보호하면서 유치원, 초·중·고, 대학, 사회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었다. 과잉 보호 속에서 문제 해결 능력도 떨어지고 부모의 그늘에 안주하는 청소년이 늘어나는 것도, 냉정하게 우리 사회구조의 변화 틀에서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정말 다양한 사건·사고가 날 때마다 즉흥적인 처방으로 정책을 만들다 보니 실효성은 없고 법의 규제는 많다. ‘갑’질의 문제도 사회구조의 틀에서 살펴보자고 주장한다.

전문가는 자신의 문제처럼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대변하는 전문가가 아닌 정당한 방안을 제시하고, 정책입안자는 재선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오늘 해결이 없으면 안 되는 절박함에서 정책을 입안하고, 시민단체는 정당성이 담보된 감시와 사명감이 있을 때 우리 사회의 갑질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아도 완화될 수는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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