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과 무늬로 아름다움과 격조를 표현하는 단청(丹淸)에 대한 인기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최고였죠.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를 보면 워낙 인기가 높은 단청 사용을 원료가 비싸다는 이유로 민간 가옥 등에서 금지할 정도였으니까요.”

단청을 주제로 한 사설 박물관은 인천시무형문화재 14호 정성길(58)단청장이 지난 2009년 세운 혜명단청박물관이 전국에서 유일하다. 그만큼 그의 ‘단청 사랑’은 유별나다.

40여 년 동안 전국을 돌며 그가 모은 단청 유물은 2천여 점으로 문화재급 유물도 50여 점에 이른다. 인천시 중구 중앙동에 있는 혜명단청박물관이 비좁아 인근 건물을 빌려서 운영할 정도다. 한 개인의 노력으로 보기에는 한눈에도 규모가 만만치 않다.

정 관장은 단청의 종류 등을 소개하며 단청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가칠, 긋기, 모로, 금단청 순으로 갈수록 화려하죠. 천연원료가 귀하다 보니 궁궐, 사찰 등 권위 있는 건축에서 많이 사용됐을 뿐이에요. 따라서 단청이 곧 불교 또는 귀족미술이라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에요.” 그가 단청박물관을 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혜명단청박물관을 찾는 외국인과 학생 등은 1년에 2천여 명에 달한다. 박물관 규모가 좁아 최대로 수용할 수 있는 관람객이 이 정도다.

“단청 체험 프로그램 등에 참가하고 싶다는 신청을 전부 다 받아들일 수 없어 마음이 아픕니다.”

단청을 일반 시민들에게 알려 대중화를 꾀하려는 그의 시도는 여러 가지 특별기획전으로 이어졌다. 지난 ‘단청문양 솟대전’, ‘강화 전등사와 정수사 단청 비교전’ 등은 전통 단청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이끌어 내는 전시회였다는 평을 받고 있다.

“강화도 전등사 건립이 정수사보다 역사적으로 더 앞서지만 정수사 단청이 더 오래된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죠. 문화유적들의 단청이 퇴색되더라도 가급적 보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단청 화공으로서의 바람이에요.”

정 관장의 손을 거친 문화유적들의 단청 작업은 부지기수다. 강화를 포함한 대부분의 인천지역 사찰 등에 그려진 예술성은 그의 나이만큼이나 완숙한 경지에 올랐다는 것이 문화관계자들의 평이다.

하지만 그는 가정에 있어서는 나쁜 아빠였다고 털어놨다. 작업이 시작되면 최소 3∼4개월은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했고, 그런 생활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부 차원의 후계자 양성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는 심경도 내보였다.

“예전에는 단청 등 문화재 관련 기술을 배우면 그래도 생계는 보장됐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해요. 자식들에게 배우라는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죠. 단청을 사랑하는 후계자들이 나와 전통의 맥을 이을 수 있도록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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