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법관. 법대 입학생과 사법시험 응시자 그리고 로스쿨 입학생들이 꿈꾸는 영예로운 자리다. 국민들의 존경과 영예는 물론 대한민국 사법부를 대표하는 대법관. 실상은 어떠할까. 1980년부터 2014년까지 대법관 출신 대학을 보면 84명 중 서울대가 66명, 기타 대학이 18명이다. 판사나 판사 경력자가 75명, 검사 경력자가 9명이다. 순수 변호사 출신이나 대학교수, 공공기관 출신은 전무하다.

1987년 이후 우리 사회는 각 분야에서 민주화가 됐지만 사법부는 오히려 관료주의의 벽을 견고하게 높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논거이다.

신뢰도도 낮게 나온다. 2010년 3월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가 발표한 국민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법원에 대한 불신이 40.8%이다. 경찰(29.1%)이나 은행(22.9%)보다 불신이 크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13-2014 세계경쟁력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사법부 독립지수는 78위다. 영국(6위), 일본(14위), 미국(32위)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다.

그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최근 대법관의 개업 문제가 법조계의 이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대법관 출신의 변호사 개업을 적극 저지하고 나선 것이다. 전관예우의 폐단을 근절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 첫 번째 대상이 차한성 전 대법관이다. 변협이 전 대법관의 개업신고서를 반려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변협은 회칙 제40조 4 제1항의 ‘서류요건을 갖추었더라도 신고사항이 부적절하다고 판단될 경우 이를 심사해 반려할 권한이 있다’를 거부의 논거로 들고 있다.

그러나 속내는 ‘대법관이 변호사 개업을 해서 사익을 취하는, 이른바 싹쓸이를 막겠다는 것’이다. 대법원 사건의 독점 폐해는 인사청문회 과정을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은 퇴임 후 10개월 동안 27억 원의 수임료로 받았던 것이 문제가 돼 국무총리 후보직에서 낙마했다.

대한변협은 그 뜻을 포기하지 않을 태세다. 하창우 회장은 후보 공약에서도 밝혔고, 차한성 전 대법관을 직접 찾아가 개업 철회를 권유했다고 한다. 어제 청문회를 실시한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게도 변협은 개업금지서약서를 요구하고 있다.

물론 반대 논리도 만만치 않다.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형평성도 문제다. 지난 20년간 퇴직한 대법관 39명 중 28명이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전직 대법관이라고 해도 개인에 따라서는 금전적 필요성도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직업 선택의 범주와 대상을 놓고 법조계에서 논란이 여전히 분분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절대적 지위를 차지했던 분들에 대해 근본적 의문과 자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매우 신선하다. 그것은 사법부도 변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기대를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직 대법관 중에 멋있게 마무리하는 분들도 계시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고려대, 박시환 전 대법관은 인하대, 조무제 전 대법관은 동아대, 배기원 전 대법관은 영남대, 김영란 전 대법관은 서강대, 양창수 전 대법관은 한양대에서 후학을 양성 중이다.

 전수안 전 대법관은 변호사 등록을 하지 않고 공익법인의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법관은 대법관답게, 헌재 재판관 역시 재판관답게 처신해 달라는 국민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모범적인 처신이다.

국민들은 ‘대법관 출신의 변호사 개업을 반대한다’는 데 과반수의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것은 관피아, 정피아, 낙하산 근절 문제에 이어 전관예우 근절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이다. 동시에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정치권에 기대거나 마지막까지 돈을 향해 치닫는 우리 사회의 지도층에게 보내는 국민들의 마지막 경고이다.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으로 상징되는 빈곤사회를 보면서 생각한다. 인생의 마지막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권력의 끝자락을 붙잡기 위해 기웃거릴 것인가. 죽는 날까지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사람의 불행을 이용할 것인가. 권력과 지위를 찾아 죽을 때까지 헤맬 것인가. 멋있게 은퇴하는 법. 존경받으면서 노년을 보내는 법. 아름답게 인생을 마무리하는 법. 과연 무엇일까. 대법관의 개업 반대 논쟁은 권력과 돈, 지위와 명예, 인생의 의미와 마무리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사건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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