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받는 것만으로도 이미 신뢰를 잃은 것이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가 초대형 태풍이 돼 정치권을 몰아치고 있다. 검찰의 수사 압박을 못 이겨 자살한 성완종 전(前) 경남기업 회장에게서 돈을 ‘받았다’와 ‘안 받았다’를 놓고 진실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사안의 무게가 가히 메가톤급이다. 결과에 따라 정치판도가 뒤바뀔 만한 일대 대사건이라 하겠다.

오는 29일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치권이다. 정치권은 곧 치러질 재·보궐선거가 현 정권의 중간평가 성격을 띠고 있고 내년에 있을 총선의 향배를 결정지을 수 있는 잣대로도 보고 있어 이번 사태의 결과에 더욱 촉각을 세우고 있다. 리스트에 적힌 인사들의 금품 수수 사실 여부를 떠나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여권이다. 정치권의 도덕성은 이미 추락했다.

보도된 바대로 리스트에 나오는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모두가 현 정권의 실세들이다. 예상대로 뇌물사건이 터지면 으레 그래왔듯이 하나같이 발뺌이고 부정이다.

당사자들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 “사실무근이다”, “황당하다”, “나와는 전혀 관계없다”는 등 강력 부인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는 가운데 김진태 검찰총장은 “메모 작성 경위를 확인하고 한 점 의혹 없이 실체적 진실을 밝히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리스트에 올라 있는 인사들의 금품 수수 사실 확인을 위해 성 전 회장의 필적 감정과 함께 진상 파악에 나섰다. 당연한 조치다. 하지만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우리 검찰에서 과연 살아있는 권력의 실세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겠느냐는 점이다.

벌써부터 검찰은 리스트에 오른 당사자에 따라 공소시효가 지났느니, 안 지났느니 하며 기일을 계산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도덕이 있고 국민 정서법이 있다. 공소시효는 별건으로 하고 사건의 진실은 밝혀야 하는 것이 검찰의 의무라고 본다.

검찰의 수사가 사건을 덮는 수사가 돼서는 안 되겠다. 명명백백히 밝혀 시민들의 의혹을 풀어줘야 하겠다. 덮고 넘어갈 게 따로 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 사회 부정부패 척결을 언급하며 “비리의 뿌리를 찾아내 덩어리를 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잖아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으로 인해 정치권 인사 모두가 긴장하고 있는 터였다.

사람은 세상을 떠날 때에는 진솔해지기 마련이다. 최후를 택하면서까지 거짓을 남기고 떠나진 않는다는 의미다. 무엇을 숨기려고 거짓을 세상에 남기겠느냐이다. 거짓으로 드러날 경우 그 자체가 오명을 남기는 꼴이기 때문이다.

 야권에서는 이번 ‘성완종 리스트’ 사건을 ‘친박 게이트’라 규정하고 총공세를 펼치는 형국이다. 하지만 원래 우리 사회에서 뇌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인사는 없다고 봐도 결코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게다.

며칠 전 한 여론조사에서 우리 사회에서 부정부패가 가장 높은 직군은 국회의원으로 10점 만점에 8.33으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는 고위공무원 7.29, 지방자치단체장 7.21 순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사자(死者)는 말이 없고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강력 부인하고 있다. 현재 수사에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성 전 회장이 남긴 유서와 녹음파일, 리스트뿐이다. 정황증거들을 찾아내어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검찰의 몫이다. 검찰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검찰이 열어 제치고 끄집어 내야 한다. 그래서 진실을 밝혀 내야 한다.

때로는 우리를 실망케 하는 수사와 재판이다. 시민은 회의적이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가 가능할까라는 점에서다. 벤츠 검사와 뇌물 판사가 수사하고 재판하는 것이 우리 사법 현실이기 때문일 게다. 만약 이러한 우려가 현실이 된다면 더 이상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공직자에 있어서는 의심받는 것만으로도 크나큰 명예 손상이다. 이번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은 하나같이 모두가 나라 최고위 공직인사들이다.

검찰은 기회 있을 때마다 말한다.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서 이 땅에 정의를 세우겠다”고. 시민들은 지켜보고 있다. ‘설마 했는데 역시나 였다’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검찰은 진실은 밝혀 내야 한다. 이것이 검찰의 존립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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