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민헌장비, 인천상륙작전기념비, 김구 선생 동상비 등 이루 셀 수 없는 비문과 기호일보 등 많은 언론사의 제호들이 다 그의 손끝에서 나온 작품들이다.

인천의 대표적인 서예가(書藝家)이자 전각가(篆刻家)인 청람(靑藍) 전도진(67)선생이 서예계 입문 50주년을 기념해 개인전을 연다.
14년 만에 개인전을 여는 소감을 묻자 사라져 가고 있는 전통 글자체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전통에 뿌리를 둔 글자체 대신 서양 활자체로 바뀌어 가고 있는 세태가 못마땅해요. ‘글씨는 마음의 그림’이라는 옛말이 있듯이 옛것의 아름다움을 무시해서는 안 돼요.” 그림과 글씨를 섞어 회화풍의 현대적인 ‘청람체’를 개발한 전통 서예가로서의 따끔한 충고이다.

국내와 일본 등 이웃 나라에까지 실력이 널리 알려진 전 선생은 전통 글자체를 소중하게 보전하고 있는 외국의 사례를 열거하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어 그는 이번 전시회의 화두를 ‘자성’이라고 던졌다. 지난 2001년 전시회 이후 작품활동과 후학 양성 등에 몰두하다 보니 앞만 보고 살아왔다는 후회와 함께 뒤돌아보는 자성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는 말이다.

국내 서예계의 큰 줄기를 잇는 동정 박세림 선생과 한일 전각계의 거봉인 석봉 고석봉의 수제자인 만큼 그의 전시회에 벌써부터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실 국내 서예 전문잡지가 선정한 대한민국 10대 서예가로 꼽힐 정도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서예가가 전각까지 겸비한 경우는 드물다.

그는 1966년 서예에 입문해 2년 뒤인 1968년 석봉 고석봉 문하에 들어가 칼을 물려받을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는 두 스승의 영향을 벗어나 예술적 독창성을 찾는 작업도 거듭해 시도했다. 모든 서예·전각 작품을 기존 전통의 방법이 아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하는 우행서 방식으로 쓰고 새기며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을 지닌 작가, 기린아로 불렸다.

기자는 이번 전시회의 출품작 60여 점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크게 서예와 새김(전각)으로 구성된 전시회”라며 “특히 서예와 새김을 동시에 접목해 옛 기와에 혼을 담아 예술로 승화시킨 작업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경우”라고 설명했다.

인하대 한문교육과 대학원을 졸업해 한시에도 조예가 깊은 전도진 선생은 유별나게 애정을 쏟은 한 작품을 소개했다. 바로 평생을 가난하게 살며 청빈함을 지킨 연암 박지원 선생의 부인인 전주이씨가 300여 년 전 지은 시를 새긴 전각 작품이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꼭 소개해 보고 싶다며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시를 읊었다.

“친정도 시집도 가난해 가난으로 시작해 오늘까지 가난이란 두 글자와 산다. 하지만 가난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나는 가난이란 무서움보다 내 아버지와 그이의 사랑이 더 행복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가난을 사랑 속에 묻고 살았다. 가훈인 청빈을 본분으로 하고 독서하는 후손을 키운 삶이었기에 여한이 없다.”
그가 이 글귀를 소개하는, 그리고 전시회를 찾아온 관람객들을 위해 읽기 쉽게 한글로 풀어쓴 데는 이유가 있었다.

“요즘처럼 돈을 밝히는 세상에 전각, 서예를 배우라는 말을 쉽게 꺼낼 수 없어요. 하지만 전시회에 온 관람객들이 이런 내용만이라도 가슴에 품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해요.”
◇청람 전도진 작품전
▶서울: 15∼21일. 오픈 오후 5시.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5길 26 홍익빌딩 갤러리 라메르 1층.
▶인천: 24∼30일. 오픈 오후 5시. 인천시 남동구 예술로 149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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