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공장을 옮기는 업체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외국은행들도 한국내 전산설비를 다른 나라로 잇따라 옮기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같은 상황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산업 기반이 무너지는 움직임이 여러 채널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도 비상대책을 세우기 보다는 장기대책일 수밖에 없는 인천의 동북아 `허브'(중심축) 육성 등 한가로운 대책에 더 골몰하는 모습이다. 정부 경제팀의 상황인식이 한심스러울 정도로 안이해 보인다.
 
최근 관세정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후 해외로 생산설비를 옮긴 업체 수는 4천100여개에 이르고 있다. 지난 98년에 368개였다가 매년 늘어나 지난해에는 1천70개로 증가했다. 옮겨가는 기업들이 대는 이유는 이미 잘 알려진대로 높은 임금, 잦은 파업, 각종 규제 등으로 꼽힌다. 높은 임금과 잦은 파업이 문제인 만큼 당연히 중국행이 압도적으로 많아 옮긴 기업의 70.7%가 중국으로 갔다. 이왕 중국으로 옮겨갔으면 그곳에서라도 사업이 잘돼야 할텐데 그렇지도 못하다는 답답한 소식이다. 이미 10개 업체 중 2개가 사업철수를 경험했고 13.7%가 곧 철수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중국에서 철수할 업체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기본적으로 중국시장에 대한 사전조사가 부족한 데다 외국인 투자관련 제도도 확립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프라가 미비하고 전문인력 확보가 어려운 점도 애로사항으로 꼽혔다. 당연한 것이 중국이 잘 나간다고는 해도 각종 기업환경은 60~70년대의 한국과 크게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아직까지는 안정적인 기업 활동을 기대하기 어려운 곳이다. 결국 많은 기업들이 몇 년 간의 생명연장만을 위해 중국으로 간다고 봐야 하는 셈이다. 국내기업들과 외국계 은행 등의 한국 탈출이 러시를 이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대로 임금, 파업, 규제 외에 정정 불안도 감안했을테고 그리고 그런 요인들이 종합해 내는 불투명한 전망이 주요 원인이 됐을 것이다. 정부가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우선 노사정책의 확실한 방향 정립, 혁신적 수준의 기업 관련 규제 완화, 그리고 정치권과의 분리 작업이다. 지금은 산업 기반이 붕괴돼가고 실업 문제가 한참 전부터 사회문제화 된 시기다. 말하자면 규제 완화에 따른 부작용이나 세수 감소를 걱정하기에 앞서 고용 기회를 늘리는 산업 기반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경제팀의 현명한 선택과 발빠른 대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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