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사에서 그가 내세울만한 기록이라곤 시즌 최고 도루 저지율이 전부였다. 포수 출신의 그는 프로에서 단 한 번도 상을 타지 못했다. 그래서 SK 와이번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팀의 목표이기도 했지만 그 자신의 도전을 담고 있었다. 조범현 SK 감독에게는 초보 사령탑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많이 따라 붙는다. 그도 그럴것이 그동안 삼성과 쌍방울에서 코치로 활동한 이래 그의 이름 석자가 알려지기는 SK감독을 맡고 부터가 아닌가 싶다. 지난 25일 막을 내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SK는 아깝게도 준우승에 머물렀다. 비록 우승을 자축하는 문구 대신 그동안의 성원에 보답하는 감사의 현수막을 내건 SK였지만 아쉬움과 뿌듯함을 동시에 만끽하는 순간이었다. 올해 한국시리즈를 평가하는데 있어 단연 최고의 화두는 SK의 급부상이 아닌가 싶다. SK는 한국시리즈까지 올라오는 동안 삼성과 기아를 연달아 누르면서 이변을 낳았다. 야구관계자들은 물론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기에 그 자체가 뉴스였다. 그러나 SK의 한국시리즈 진출은 단순히 야구 역사로만 평가될 부분은 아니다. 분식회계와 대선 비자금 수사 등에 연루돼 창사 이래 최대 시련을 겪고 있는 SK그룹 전체에 크나큰 사기를 북돋아 줬으며 연고팀으로서 스포츠 불모지인 인천에 최고의 선물을 안겨주었다. 이점이 스포츠가 갖는 시너지 효과이며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현대와 삼성처럼 그룹과 구단측의 절대적인 투자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내로라 하는 우수선수들을 확보한 것도 아닌 SK로서는 순전히 코칭 스탭과 선수들간 융화와 `할 수 있다'는 의지가 지금의 위치를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데이터 야구'를 유감없이 발휘했던 조범현 감독의 용병술이다. 모험에 가까울 만큼 대타기용이나 투수교체에 과감했고 거액을 들여 선수를 트레이드 한 점 등은 자신을 믿고 선수들을 믿지 않으면 초보감독으로서 섣불리 감행하지 못할 일이다. 그러나 감독으로서 그의 가장 큰 노력은 선수들로 하여금 하위팀이라는 패배의식을 갖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아주는 일이었다. 자신들을 믿는 감독에게 어떤 선수가 잘 하려고 발버둥치지 않겠는가. 희망을 말해준 SK에게 내년 시즌에도 좋은 성적이 있기를 바란다.(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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