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락기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시조(時調)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우리 민족 고유의 정형시다. 그야말로 우리나라 시가의 종가(宗家)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약 1세기의 내력에 불과한 자유시에 밀려 지금은 그 종가 자리를 내어준 상태가 아닌가? K팝이다 드라마다 한식이다 하여 한류 바람이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이때, 가장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만한 한국 시가의 하나인 우리 전통 시조의 위상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안보는 온도 53℃인 온천 관광지역이다. 왕의 온천이라 불릴 만큼 고대로부터 임금님이 온천욕을 하고 묵어갈 정도로 무색·무미·무취의 수질 높은 온천지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봄의 벚꽃 풍경이 이렇듯 장관을 이루고 있을 줄은 여기에 살아보기 전에는 몰랐다. 수안보 안으로 흐르는 석문천변 길과 수안보마을 둘레 길섶 따라 도열한 검은 거목들이 팝콘처럼 뿜어대는 벚꽃들은 백색의 향연 그것이다.

농익은 조선 여인이 따사로운 봄볕에 겨워 옷고름을 풀어헤치듯 소리 없이 화사한 미의 경연을 벌인다. 수안보는 ‘온천’과 봄날의 ‘벚꽃잔치’를 이 지역의 대표 브랜드로 내세울 만하다.

시조와 수안보는 그 오랜 역사성이나 고유성으로 볼 때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다. 더구나 ‘벚꽃과 온천’이라는 하드웨어에다가 ‘시조’라는 소프트웨어의 만남은 영육이 합일된 하나의 온전한 완성체라 하겠다.

 이에 ㈔한국시조문학진흥회에서는 올 수안보온천제를 기념해 얼마 전인 4월 17일에서 19일 사이에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수안보온천 시조문예축전’을 개최한 바 있다.

이 행사는 우리 시조를 한 지방으로부터 일반 국민 속으로 확대 보급해 시조의 전국화 내지 세계화의 기반을 닦고, 문예행사를 통한 수안보온천 지역관광의 품격을 높임으로써 양쪽이 서로 보완·상승하는 계기를 마련코자 만든 것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다.

시조가곡 발표회, 전국 시조백일장, 시조화 전람회, 제2회 온천시조문학상 수여, 제6회 역동시조문학상 수여 및 어울림 시조 한마당 등의 프로그램으로 수안보상록호텔에서 3일간에 걸쳐 이뤄졌다.

시조화 전람회는 작년에는 ‘수안보온천’을, 올해는 ‘수안보 벚꽃’과 ‘미륵리 사지’를 주제로 해 기성 시조시인들에게서 온천시조문학상을 걸고 작품을 공모했다. 이를 유명 화가에게 의뢰, 시조화 작품으로 제작해 호텔 로비에 전시한 것이다.

 여러 곳에서 오시는 호텔 손님에게 시조와 수안보를 알리는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전국 시조백일장도 수안보 관련 시제를 내고 이에 따라 지어서 낸 참여자들의 시조작품을 심사한 후 당선작을 선정해 발표함으로써 지역사회를 알리는 데 상당히 기여했다고 본다.

어울림 시조 한마당은 시조시인들뿐 아니라 이곳 노인회장, 여성 방범대원, 호텔 직원 등 주민들이 함께 참여해 시조를 낭송하거나 시조가곡을 불렀다.

특히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개막식에 앞서 진행된 시조가곡 발표회였다. 이 지역 관련 창작 시조를 가곡으로 작곡한 뒤 유명한 성악가와 피아니스트를 초빙해 지역 유지와 여러 하객들이 모인 가운데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곡명은 ‘수안보 속말’과 ‘충주호 판타지’, ‘주정산 자락에 꽃잎은 떨어지고’라는 이 지역을 예찬한 시조와 시를 기초로 했다. 행사 후반에 지역주민도 참여해 다시 불렀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환호성이 홀을 넘쳐났다.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시조가 이렇게도 활용되는구나! 누구나 즐겨 부를 수 있는 노래로 불려지다니 옆에 가까이 있는 게 바로 시조였구나 하고 절로 느끼게 했다.

사실 시조가곡의 창작은 요즘에 새로 시도한 것이 아니다. ‘성불사의 밤’ 같은 애창 가곡도 그 가사는 노산 이은상의 시조가 아니던가. 이제 수안보 주민을 시발로 해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반 국민 속으로 시조 창작 붐이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수안보의 봄은 서울보다 늦게 온다. 서울 꽃이 질 때서야 수안보의 벚꽃은 핀다. 늦게 핀 벚꽃들은 꽃터널이 되어설랑 어쩌다 꽃구경을 놓친 이를 모두 맞아 껴안는다.

아, 뒤늦게 만개한 벚꽃 세상이여! 이 수안보에 만개한 벚꽃처럼 늦은 게 늦은 것이 아니다. 저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 곳곳으로 퍼져서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쉽게 한 수 시조를 지을 날을 생각한다.

앞으로 ‘수안보온천 시조문예축전’이 매년 개최돼 이곳이 시조의 중원이 되기를 고대한다. 우리 시조와 수안보온천은 이래서 그 만남이 찰떡궁합처럼 절묘하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