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제 불은초등학교장

 며칠 전 방송된 뉴스에 ‘4월이 어떤 달인가’라는 질문에, 국무총리가 ‘잔인한 달’이라 답하는 장면이 있었다. 4월은 물오른 나무들이 저마다 새싹을 돋우어 산천을 연두색으로 물들이기 때문에, 우리말 잎새달로 명명한 그야말로 희망과 비전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달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4월하면 잔인한 달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4월은 왜 잔인한 달이 되었을까?

영국의 시인 엘리어트(T. S. Eliot)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하기 전까지는 수많은 낭만파 시인들이 4월을 아름다운 달 희망의 달로 예찬해 왔다. 1922년에 발표한 ‘황무지’에서 엘리어트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황폐화된 유럽의 정신적 공황상태를 이렇게 표현했다.

 “4월은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며 / 추억에 욕망을 뒤섞으며 / 봄비로 잠든 뿌리를 일깨운다.”

세계대전으로 황무지처럼 황폐한 인간의 마음을 외면한 채, 새로운 생명이 움트고 꽃을 피우는 4월이 시인에게는 더욱 잔인하게 느껴졌으리라. 이후 많은 사람들이 ‘황무지’의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구절을 인용했고, 억울하게도 ‘4월은 잔인한 달’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4월은 정말로 잔인한 달이 되어버렸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상처와 아픔이 1년이 지난 지금도 봉합되지 못한 상태로 우리 사회에 갈등과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특히 피해자 다수가 어린 학생이었던 만큼, 안전불감증에 대한 경고와 함께 사회 안전망 확충과 안전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다.

 각계각층에서 많은 안전대책과 방안이 제시되었고, 정부는 국민안전처를 신설하고 안전교육 강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으로 참담하다.

지난 2월 영종대교에서 발생한 106중 추돌사고는 경찰 조사 결과 짙은 안개와 운전자들의 부주의로 인한 것이었고, 의정부시 아파트 화재와 제주시 공업사 화재, 강화도 캠핑장에서 발생한 화재 역시 안전 불감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결론이다. 지난해 학교 안전사고가 재작년에 비해 1만1천 건이나 늘었다는 통계 또한 세월호 참사의 교훈이 구호로만 그치고 있음을 방증하고 있는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은, 이미 일이 잘못된 뒤에 후회하고 손을 써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의미로 흔히 쓰이는, 전국책의 고사성어 亡羊補牢(망양보뢰)와 같은 의미이다.

전국시대 초나라 대신이었던 장신은 양왕에게 사치와 환락으로 국고를 낭비하는 신하들을 멀리하고, 왕 자신도 사치를 버리고 국사에 전념할 것을 충언하였다. 그러나 양왕은 듣지 않고 오히려 화를 내었고, 장신은 결국 이웃의 조나라로 떠나버렸다. 그 후 5개월 뒤 초나라는 진나라의 침공을 받았고, 망명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자 양왕은 장신을 다시 불렀다.

“과인이 그때 그대의 말을 들었다면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 것이오.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은 없겠으나, 혹시 방도가 있다면 어찌해야 할지 알려주시오.”

“토끼를 발견하고 사냥개를 시켜도 늦지 않고, 양이 달아난 뒤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습니다.”

 이 고사에서 장신은 亡羊補牢(망양보뢰)를 양을 잃은 뒤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는 뜻으로 쓰고 있다. 부정보다 긍정적인 뜻이 강한 것이다. 물론 소를 잃기 전에 미리 외양간을 튼튼히 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소를 잃은 뒤에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으면, 다음에 다시 소를 가질 자격조차 없을 뿐더러, 더 많은 것들을 잃게 될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분명 우리의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이고, 지울 수 없는 상처이다. 하지만 실패한 후 뒤늦게 뉘우쳐도 소용없다고 실망과 좌절에 빠져있을 것인가? 비록 늦었지만 외양간을 튼튼히 고쳐 짓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인가? 그리고 세월호 참사로 우리 곁을 떠난 영령들을 진정으로 위로하는 길은, 과연 어떤 것인지 심사숙고하면서 잔인한 달 4월을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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