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法)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사회다. 대학생들이 법보다는 돈과 권력을 선호한다고 하는 실망스런 조사 결과다. 장차 나라의 간성(干城)이 될 오늘의 젊은 대학생들의 사고가 이렇다면 무엇인가 크게 잘못된 것이다.

법률소비자연맹이 법의 날(4월25일)을 맞아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85.69%가 법이 대체로 지켜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한다. 법이 대체로 준수된다는 응답은 12.24%, 매우 잘 지켜진다는 0.24%에 그쳤다. 조사결과 충격적인 것은 나라의 정치를 책임지고 있는 정치인들이 가장 시급히 척결돼야 할 대상으로 꼽혔다(84.24%)는 점이다. 다음으로는 실망스럽게도 공직계의 비리가 11.34%로 뒤를 이었다한다.

더욱 우리를 암울하게 하는 것은 대학생들의 87.01%가 법보다는 권력이나 돈의 위력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는 데 있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에 동의한다는 의견도 54.12%에 달했다. 권력과 돈이 있으면 법을 어겨도 가벼운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데에도 54.92%가 찬동했다. 법원의 공정성도 대학생들로부터 불신을 받았다. 불공정한 편이라는 응답이 38.48%, 매우 불공정하다는 답은 35.86%다.

이렇듯 오늘 날 우리 젊은 대학생들이 법보다는 권력이나 돈의 위력이 더 큰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사고를 지닌 부류가 다른 집단도 아닌 대학사회라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기성 법조인들부터가 법에 대한 불신과 무시가 팽배해 있으니 여타 집단에서 법을 불신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다.

법의 날을 맞아 검찰과 법원, 변협 그 어느 기관도 이렇다 할 행사를 갖고 법문(法文)을 발표하거나 기념비적인 법어(法語)를 내 놓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기껏해야 법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 법무부와 대한변호사협회가 대검찰청 회의실에서 법조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법의 날’ 기념식을 갖고 법조인 스스로의 법에 대한 무시와 불신을 자인하고 반성하는 자리에 지나지 않은 것이 고작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법률가가 외면하는 법을 신뢰하고 따르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법조인들이 솔선수범해 법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고 말해 법조인부터 법을 지킬 것을 촉구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법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야 법치주의가 확립된다.”고 하여 법조인들부터 준법정신이 결여돼 있음을 자인했다.

하창우 변협회장 또한 “법원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진정으로 보장하는 길이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하여 법에 의한 지배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지적했다. 법조인 스스로가 자괴감에 빠져 한 말들로 들린다.

하기야 대법관을 지낸 인사들이 국무총리 청문회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실정이니 일반인들에게 ‘법을 지키라’함은 무리라 하겠다. 시민은 더 이상 법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없다.

게이트가 터질 때마다 특검을 운운하곤 한다. 이는 검찰을 평소에 믿지 못해오고 있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검찰이 자초한 불신이다. 필자는 일전에 유죄율 99%를 자랑하며 성역없는 수사로 유명한 일본 동경지검 특수부 검사를 두고 ‘도시락 검찰’이라 하여 치켜세운 적이 있다.

그만큼 검찰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고 수사의 정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검찰상이 요청되고 있다. 동경지검 특수부에 사건을 배당해야 된다는 얘기가 나오기 전에 검찰에 권력형 비리에 대한 엄정수사를 촉구한다.

해마다 법의 날이 돌아오면 필자는 언제나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의 사자후(獅子吼)가 떠오르곤 한다. “온 천하가 일자리는커녕 먹을 것 입을 것이 없고, 발 뻗고 잘 방 한 칸 없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얼마가 됐든 국록(國祿)을 받는 사람은 불평하거나 돈을 탐내서는 안 된다”

그는 또 “모든 사법 종사자는 굶어 죽는 것을 영광이라 생각하라. 그것이 부정을 저지르는 것보다는 명예롭기 때문이다.”라고 후배 법조인들을 가르쳤다.

지켜지지 않는 법을 가지고 우리는 법치국가라 하고 있다. 젊은 대학생들의 법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우리 사회다. 권력자 모두가 ‘법불가어존(法不可於尊)’이다.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법이 적용되는 사회가 진정 정의로운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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