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덕우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1883년 인천이 개항되면서 그간의 숙원 과제였던 무관세(無關稅)에서 벗어나 최고 30%에 달하는 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됐다.

부산 개항 후 7년 만이었고 명실상부 국제 무역항으로서의 체면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해관(세관)을 건축해야 했고, 초청한 외국 직원들에게 급료를 지급해야 했다. 또한 이들을 감독하는 감리서를 신축해야 했다. 잠시나마 우정총국의 사무도 봐야 했다.

개항은 근대화를 지향했지만 그에 수반하는 재정은 열악한 상태에 있었다. 그나마 새로운 수입원이었던 관세는 일정 부분 국가 재정에 보탬을 줬지만 신문물을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거기에 왕실의 권위를 확보하기 위한 경비를 위해 관세를 담보삼아 차관을 제공하겠다는 유혹이 빈번하기도 했다.

개항은 국제 간 교역이었지만, 산업혁명을 경험한 서구 자본주의의 산물과 조선의 농산품은 원초적으로 평등거래의 대상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들은 조선의 상품보다는 상품 외적인 가치에 주목했다.

서구인의 시각에서 본 조선의 물산은 그야말로 희귀성이 높은 골동품적인 가치였고, 조선인의 무지와 기술력의 부족에서 방치된 여러 유형의 지하 광물자원과 지상의 천연자원은 그들의 좋은 노림 대상이 됐다.

조선정부는 근대화에 수반되는 엄청난 자금이 필요했고, 서구 자본세력은 우리의 ‘약점’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광산을 채굴하고 삼림을 채벌하는 등 이권을 침탈해 갔다.

외자에 의한 경인철도가 개통되면서 우각역 옆 요지에 주한미국공사 알렌이 별장을 건립했다. 알렌은 갑신정변으로 부상당한 민영익을 치료한 것이 계기가 돼 왕실의사와 고종의 정치고문으로 1890년 미국 공사관 서기관으로 임명됐던 인물이다.

 당시 고종과 특별한 관계에 있던 알렌을 전면에 배치해 미국의 이권을 확보코자 했던 의도였다. 그리하여 알렌은 1895년 운산광산의 채굴권과 1896년 경인철도 부설권을 ‘모스’에게 주선했고, 1897년 전차 및 전등 등의 설치권을 받는 한편 1902년 하와이 이민사업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옛 전도관 자리에 있었던 알렌 별장은 인천 개항 후 초가집 일색의 조선인 마을에 2천300여㎡ 대지 위에 660여㎡의 흰색 2층 돔 형식의 웅장한 서양식 건물로, ‘공무원’ 신분이었던 그가 어떻게 지을 수 있었는지 의문이 되는 대목이다. 후일 알렌이 친구 브라운에게 보낸 편지에는 “모스와 헌트는 그들의 이익이 확보되고 금광이 원활하게 운영되자 나에게 두 번에 걸쳐 현금과 선물을 줬다”고 술회하고 있어 아마도 이권을 주선한 대가가 별장의 건축비였음을 추측하게 한다.

개인의 비자금은 정도에 따라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기업체 등의 비자금은 규모가 크기 때문에 그 관리를 위해 전용 장부를 만들어 둔다고 하고, 개인의 정치적·사회적 명리를 위해 덫이나 올무로 얽어 놓아 안전장치를 마련한다고 한다.

비자금을 다룬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 등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할수록 흥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극의 내용이 치밀한 데서 기인하겠지만, 그런 모습들이 실제에 있어서도 존재할 것이라는 추정을 반영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국권상실기 고종은 비자금을 조성해서 특정 인물에게 하사금 형식으로 지급했고, 그것을 항일운동자금으로 사용하게 했다. 일제의 감시 속에서 별도의 자금을 비축하는 것조차 힘들 때였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고종은 독일 영사 잘데른을 통해 독일 은행의 비밀계좌에 금괴와 현금 등 100만 마르크를 예치하기도 했다.

일본 외무성에서 발견된 문서에 따르면 이 돈은 항일운동을 위한 자금으로 사용됐으며, 상해임시정부 수립자금과 파리강화회의에 밀사 파견 자금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비자금은 때로 가장(家長)의 권위를 세우는 데 요긴하게 쓰이기도 한다. 법이 허용하는 범주 내에서 비자금이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은, 그것이 옳은 일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떠나 어느 정도 인정된다고 보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의 원활한 경영과 경영주의 덕목을 보여 주는 사례로 활용된다 해도 원칙에 어긋나면 일벌백계의 방법밖에는 없다. 아무리 엄격한 대처 방안이 있다 하더라도 비자금의 존재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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