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과거에 대한 깊은 성찰과 현실에 대한 냉철한 직시,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발전의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조건이다. 더불어 막대한 희생과 큰 저항이 따르는 개혁도 이러한 통시적 맥락에 근거해서 그 성패 여부가 가려진다.

중종 재위 10여년 만에 드디어 사림의 시대가 개막되면서 등장한 정암 조광조는 개혁의 필요성이 절실했던 조선의 서광임에 틀림없었다.

당대 조선의 청년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꿈과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하는데 조광조는 충분한 능력과 인격 갖춘 인물이었다.

이 시기는 연산군을 폐위시키는데 앞장섰던 쿠테타의 주류 세력인 훈구파가 권력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던 때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광조는 각종 비리의 온상이었던 과거제도를 개혁하는데 성공한다. 이른바 현량과라는 획기적인 관리 선발 제도를 통해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유능한 인재들을 대거 등용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중종의 신임을 등에 업은 조광조와 사림 세력은 본격적인 개혁 작업에 착수한다. 조광조를 중심으로 김식을 비롯하여 유인숙, 이청, 윤인필 등 젊은 사림들이 주축이 되어 소격서 혁파를 제기하면서 기득권 세력과 정면충돌을 야기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소격서는 혁파되었다.

이후 조광조와 신진 사대부들은 연산군을 제거하고 중종을 옹립하는데 기여했던 반정공신인 정국공신들의 훈작을 삭제하라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또 한 번 수구 세력의 격렬한 반항에 직면하게 된다.

국가와 백성들의 어려운 형편을 외면하고 자신들이 쥐고 있던 권력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훈구세력은 홍경주, 심정, 남곤 등이 중심이 되어 조광조 제거 음모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결국 조광조는 공신 기득권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음으로써 그의 개혁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공기업 개혁은 이미 물 건너가고 정치개혁은 여전히 요원하며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규제개혁 드라이브는 공무원들에게 씨도 안 먹히고 여전히 제 자리를 맴돌고 있다.

더불어 공무원 연금 개혁은 온갖 교활한 꼼수로 무장한 공무원들과 도대체 부끄러움을 모르는 4류 정치의 본산지인 국회가 결탁하여 개혁의 시늉만 낸 채 눈속임의 맹물 개혁이 되고 말았다.

물론 개혁은 잘하는 것을 더 잘하게 만드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그동안 잘해 온 것보다 앞으로 닥칠 국가의 총체적인 위기와 어려움에 더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다.

경제는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되며 청년들을 고시학원으로 내몰고 있고 국가 기강은 참담하게 해이해져 있으며 안전 불감증은 여전히 우리의 안전에 위협적이다.

그러나 기업 정도를 제외하면 한국 사회는 변화와 개혁에 대해서 요지부동이다. 개혁은 전격적이고 과감하지 않으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그렇지만 개혁의 최우선 대상인 국회와 정치인들이 각종 시급한 개혁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이 난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병은 치료보다 예방이 먼저다. 치료보다 예방이 더 쉽고 비용도 훨씬 적게 들며 건강 유지에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방에는 철저한 관리와 강력한 절제가 요구되지만 예방의 기회를 놓쳤다면 사태가 더 악화되기 전에 병든 부위를 제거해야 한다.

조광조의 개혁이 너무 성급하고 과격했다는 측면을 전혀 도외시 할 수는 없지만 시급하지 않은 개혁은 없다. 당시의 국가의 사정을 고려하면 개혁의 사안들은 매우 심각한 것이었고 이에 따라 개혁의 방향과 속도도 급진적이고 혁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욕심은 역사적 교훈을 애써 외면하거나 간과한다.

그래서 인간은 욕심을 숙주로 삼은 어리석음으로 인해 당장의 이익에 정신이 팔리고 그 너머의 해악에 눈이 먼다. 심봉사와 함께 맹인 잔치에 왔던 모든 장님이 눈을 뜨는데 뺑덕이네와 도망친 황봉사만 눈을 못 뜨게 된 것도 그의 탐욕 때문이었다. 

국익보다 앞서는 개인적 이익과 정파적 이익 추구는 대다수 국민의 앞으로의 삶을 갉아먹는 행위다. 개혁은 기성세대도 지키고 후속 세대도 보호하는 첩경이자 미래의 가치를 확보하는 힘든 작업이다. 조광조의 개혁 정신이 여전히 살아 있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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