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상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운동이 거세게 일던 1995년. 덕적도 서포리에서 작은 배를 탄 일행은 눈앞에 보이는 장관에 넋을 잃었다. 때는 여름. 한 달 중 바닷물이 가장 낮게 내려가는 시간이라 했다.

바다 한가운데에 살살 포말이 일더니, 일순 황금 모래벌판이 홍해 갈라지듯 좍 펼쳐지는 게 아닌가. 말로 듣던 ‘풀등’을 굴업도 앞바다에서 가슴 벅차게 만난 일행은 뛰어들고 싶은 욕망을 절제해야 했다.

코앞의 굴업도를 풀등을 피해 멀리 돌았던 시절에서 20년이 지난 요즘, 이작도가 아니라면 풀등은 여간해서 알현하기 힘들다.

인천 앞바다 인근에서 막대한 양의 모래가 채취된 이후 굴업도 앞바다는 폭이 5마일 넘던 풀등 대부분을 잃어간다.

굴업도 앞바다만이 아니다. 인천 앞바다에 많았던 풀등의 운명이 그렇다. 풀등만 사라지는 게 아니다. 인천 연근해 크고 작은 섬도 해안의 두툼했던 모래를 잃고 있다.

방풍림의 소나무들이 뿌리를 드러내며 쓰러져 가는 덕적도는 넉넉했던 해안을 잃어간다. 해사 채취를 모르던 시절과 비교해 터무니없이 좁아졌다. 바위를 드러낸 해안도 인천 도서에 부지기수다.

모래에 알을 낳던 어패류도 사라져 간다. 인천에서 물텀벙이라 말하던 아귀도 통 보이지 않는다.

그물에 걸려 재수없다며 버렸던 아귀는 귀한 존재가 된 지 오래다. 그러니 인천 물텀벙이 골목의 경기는 예전 같지 않다. 낙지도, 꽃게도, 하다못해 밴댕이도 희귀한 존재가 돼 간다.

최근 인천의 땅이 1년 사이 여의도 면적의 2배 이상 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영종도 인근에 항로 준설토를 매립하고 송도신도시 인근에 가녀리게 남은 갯벌을 마저 매립한 결과리라.

밀물 때 잠기고 썰물 때 드러나는 갯벌은 해안에 펼쳐지는데, 갯벌은 대한민국의 영토가 아니었나? 자동차가 누비지 못하고 고층 빌딩이 서지 않으면 땅이 아닌가? 코앞의 바다가 벌어지며 썰물 때 드러나는 풀등도 영토와 관계가 없는 걸까? 갯벌과 풀등을 영토로 간주하고 다시 계산한다면 오히려 인천은 여의도 수십 배의 땅을 잃었을 게 틀림없다.

삽으로 육지의 흙을 떠서 논을 늘리는 방식의 소박한 매립은 이제 없다. 요즘은 중장비를 총동원하는 기업이나 정부가 통 크게, 거대한 제방으로 바닷물을 틀어막으며 광활하게 매립한다.

그 면적은 아무리 좁아도 2.9㎢인 여의도보다 보통 넓다. 그렇게 바닷물을 막은 제방 안쪽을 해수면보다 높이려면 무엇을 넣어야 하나? 육지의 흙? 어림도 없다. 육지에서 흙을 퍼오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 뿐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반대운동에 부딪혀야 한다. 웬만한 산을 통째로 밀어내도 어림없지 않나.

인천 앞바다에 세계에서 그 유례가 없는 풀등이 사라지고 해안의 모래가 유실된 이유는 해사 채취에 한정할 수 없다. 해사 채취도 무시할 수 없지만 광범위하게 갯벌을 매립한 간척과 무관할 수 없다.

바닷물 유통을 틀어막은 제방의 안쪽에 제방 밖의 갯벌에서 막대한 모래와 개펄을 준설해 옮기지 않았나. 인천 앞바다의 광활했던 갯벌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인천공항 아래, 남동인더스파크 아래, 연수구 아파트 단지 아래, 매립을 멈추지 않는 송도신도시 아래에 인천 앞바다의 오랜 자원이던 수많은 어패류와 함께 오래전에 질식사했다.

인천 앞바다는 갯벌과 풀등을 앞으로 회복할 가망이 당분간 없다. 한강에 댐뿐 아니라 4대강의 대형 보가 겹겹 놓이면서 오랜 세월 인천 앞바다에 내려앉았던 개펄과 모래가 흘러들지 못한다.

갯벌을 산란터로 여기던 수많은 물고기와 조개들도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 매립지 제방 밖에 개펄이 물컹물컹하게 조금씩 밀려오지만 죽처럼 쌓이는 개펄은 생태계를 품어내지 못한다. 그냥 ‘죽뻘’일 뿐이다.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바다가 따뜻해진다. 이작도에 남은 풀등에 관광객이 찾아오는 계절이 왔지만 20년 전 굴업도 앞바다를 열었던 풀등처럼 황금색은 아니다.

개펄이 섞여 거무튀튀하더라도 올 여름에 방문할 기회를 만들고 싶다. 인천에 살면서 풀등을 아직 체험하지 못했는데 다 사라지기 전에 맨발로 걸어보고 싶다. 몸을 뒹굴려도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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