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틸 라이프(Still life)’의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은 “한 사회의 품격은 죽은 이들을 대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고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우리 사회의 장례 모습은 어떤가? 우리는 때로 장례식 풍경을 보며 망자가 살아온 생의 열정과 인간 됨을 판단하기도 하며, 생전에 남긴 발자취와 성공을 척도로 애도의 크기를 결정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장례 수준과 규모가 효심의 바로미터로 측정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고독사’의 경우는 어떨까? 여러 가지 이유로 홀로 살아가던 사람의 급작스러운 죽음. 친인척도 없이 외롭게 생을 마친 무연고 사망자의 경우, 우리는 이 죽음을 어떻게 애도해야 할까? 고독사는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낯선 용어이자 현상이 아니다.

 2014년 조사에 따르면, 5시간에 한 명 꼴로 삶을 마감하는 쓸쓸한 죽음이 발견된다고 한다. 변화되는 사회환경 속에 1인 가족이 증가하는 요즘, 어쩌면 고독사는 누군가의 비보가 아닌 우리 자신의 미래가 될 지도 모를 불안한 시대에 직면해 있다.

죽은 이들을 대하는 방식이 한 사회의 품격을 나타낸다는 소회를 밝힌 파솔리니 감독은 이런 자신의 생각을 ‘스틸 라이프’라는 영화에 담았다. 성실하지 못했던 혹은 잊혀진 채 살다 간 외로움 죽음들을 최선을 다해 추도해주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케닝턴 구청 소속 공무원 존 메이는 고독사 한 사람들의 장례를 치르는 일을 22년째 업무로 삼고 있다. 초라한 유품을 단서로 고인의 생전 삶을 유추해 보며 그들을 위한 추도문을 정성스레 작성하고 어렵사리 연락이 닿은 망자의 지인들을 초대해 보지만, 대부분의 장례식은 존 메이만이 홀로 남겨진 채 그 죽음을 애도하기 일쑤였다.

존 메이는 화장되어 한줌의 재로 변하는 그 순간을 너머 납골당의 유골 보존기간 만료일까지,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지인들의 연락을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날, 22년 차 공무원 존 메이에게 해고 통보가 전해진다. 누구도 찾지 않는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식과 유골 보존에 대해 고리타분하게 원칙을 고수하는 그의 태도는 ‘성실하긴 하지만 융통성이 떨어지고 업무처리가 늦음’이라는 평가로 직결됐다.

즉 슬퍼할 필요도 없는 일에 시간과 예산을 많이 소모한다는 판단 아래 존 메이의 비효율성이 해고사유가 된 것이다. 이에 그는 빌리 스토크 케이스를 끝으로 내쫓기는 신세가 됐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의뢰인을 위해 소극적 지인 찾기에서 벗어나 영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빌리 스토크의 삶을 뒤쫓기 시작한다. 망자와 지인들을 이어주기 위한 노력을 통해 존 메이 자신 또한 인간관계의 소중함과 인생의 참 행복을 새삼 느끼게 된다.

영화 ‘스틸 라이프’의 스틸(Still)은 실로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죽음 이후의 ‘정지된 삶’을 뜻하기도 하며, 스틸 사진 한 장으로 ‘기억되는 생’을 의미하기도 하고, 존 메이의 변화없이 ‘고요했던 일상’을 표현하는 단어임과 동시에 여전히 ‘계속되는 삶’이라는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다.

영화는 스틸의 다양한 의미를 모두 포괄해 삶과 죽음의 다양한 단면을 보여준다. 비록 역사에 길이 남을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더라도, 기구한 사연 속에 홀로 남아 쓸쓸히 마지막을 맞이했더라도 모든 이의 삶은 반짝반짝 빛나는 귀한 삶이었다.

 어쩌면 죽은 자를 대하는 태도는 살아있는 자를 바라보는 시선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죽은 자를 대하는 사회의 품격을 고민하기에 앞서 지위와 직업, 물질적 성공을 기준으로 살아있는 자들의 가치를 측정하는 우리의 품격에 대해서도 깊은 반성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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