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옥엽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또 근래에 만들어진 부부의날 등이 있어 ‘가족의 달’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이렇게 매년 오고 가는 5월이지만 2015년의 5월은 왠지 보내는 끝자락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급속한 물질적 발전과는 달리 정신적 성숙은 멈춰 버린 듯한 느낌이다. 연일 보도되는 사건과 사고의 대다수도 경제문제로 인한 가족의 파탄 소식이거나 정치적 의견을 달리 하는 집단 간의 이념 대립으로 인한 끊임없는 갈등 양상이다.

그동안 세계화를 기치로 다양성을 지향하다 보니 정작 사회 내부의 기본인 도덕적 소양이나 정신적 좌표에 대한 고민은 없이 자유로운 사고와 개성을 우선시 하고 그 결과들을 가치의 본질인 양 추구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공동체 구성원 각자의 부모, 자식, 스승, 제자라는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혼돈하고 삶의 지표를 잃어버림으로써 표류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사회적 무관심 속에 웃자란 식물처럼 숙성되지 않은 채 외형만 자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인터넷상의 가상현실과 실제 생활을 혼동하며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양산하고 있는가 하면, 사회·경제적으로 성공한 부류에 속한 어른들이 가시적인 성과에만 치중함으로써 정신적 성숙을 거치지 못하고 자신의 진정한 가치와 역할에 대한 고민 없이 정상에 올라 결국에는 비상식적이고 병적인 행태를 표출시키고 있다.

 이러한 병폐는 때로 경제적 장애에 봉착했을 때 가족을 자신과 동일시해 모두 희생시키고 자신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또 지나친 정치권력에의 욕망은 그 해결의 실마리를 타인의 잘못으로 전가하거나 보복적 차원의 빗나간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근래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강좌가 많아졌다는 것은 이러한 사회적 위기감에 대한 반향이 아닌가 싶다. 그동안 외형적 성장에만 치중한 나머지 부족하고 공허해진 내면에 대한 자정작용인 것이다.

그럼에도 인문학의 ‘붐’ 현상은 인문학의 진정한 의미 파악보다는 일시적인 유행처럼 휩쓸려 가는 느낌도 있다. 무엇보다 이 시대의 진정한 가치는 우리 사회공동체의 기본 도덕에서 구해야 할 것 같다.

그러므로 지식의 정도나 경제적 성공이 우리 사회의 가치 척도가 돼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 속 선조들의 사회 인식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사회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고 가족과 국가에 대한 본령적 의미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선조들의 삶과 사회의식을 찾아볼 수 있는 오랜 역사 기록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열전(列傳)과 효선(孝善)조를 따로 두고 국가와 가족에 대한 기본적 도덕률을 담고 있다.

그 대표적 이야기가 ‘손순매아(孫順埋兒)’, ‘향득사지할고공친(向得舍知割股供親)’, ‘빈녀양모(貧女養母)’, ‘설씨녀(薛氏女)’, ‘검군(劍君)’ 등의 사례에 나타나고 있다.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고자 어린 아들을 땅에 묻으려다 종을 얻고 보답을 받은 손순의 이야기나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병든 아버지를 봉양했다는 향득, 또 눈먼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노비 신분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지은의 이야기는 부모·자식 간 효의 도리를 보여 주고 있다.

비록 계약에 의한 것이었지만 아버지 대신 병역의 의무를 짊어졌던 가실에 대한 설씨녀의 오랜 기다림의 이야기는 부부간의 신뢰를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죽음을 마다하지 않고 사회공동체의 의리를 보여 주는 검군의 이야기는 오늘날과 같이 불신이 팽배한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묵묵히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다수가 있어 발전해 가고 있다. 이 시대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는 어떤 것인가? 가치를 위한 가치를 기형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5월을 보내는 지금, 다시 한 번 공동체의 가치를, 가족의 소중함을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통해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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