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행숙 한국미래정책연구원장

 최근 공무원연금제도와 국민연금제도의 개혁 문제로 나라가 시끄럽다. 여야를 막론하고 청와대, 그리고 국민들의 입장이 서로 나뉘어 갈등과 분열의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국민연금이나 공무원연금제도, 그리고 의료보험제도 등은 복지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국가에 의해 윤택한 삶을 보장받는 복지제도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좀 더 나은 조건을 쟁취하려는 마음은 모두가 같을 것이다. 때문에 이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은 향후 복지국가 정착의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러다 보니 2000년대에 들어서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넘는 상황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대선주자들은 의례히 복지공약을 국가의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고, 국민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꼭 이러한 요인들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최근 10여 년간에 걸쳐 복지포퓰리즘에 스스로 빠져들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내가 아프거나 설령 일을 못하더라도 당연히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하고, 노인이 되면 또한 국가에서 당연히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들의 공통적인 생각일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국가의 역할이 바로 국민들의 기본적인 삶과 안전을 책임져 줘야 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 경제법칙 중 가장 기본적인 희소성의 원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한정된 자원으로 모든 사람들의 욕구를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가?

과연 우리가 복지국가의 모델로 자주 거론하는 북구 유럽의 제 국가들만큼 국민소득이 높은지, 아니면 복지제도의 역사가 그들보다 긴지, 또한 그들 국가를 보면서 우리에게 유리한 면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짚어 볼 필요가 있다.

복지문제와 관련, 영국의 사례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한때 1942년 ‘베버리지 보고서’를 통해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체제를 구축한 국가였으나 최근 영국 정부는 ‘일하는 복지’ 제도를 핵심으로 설정, 실업률을 8.4%에서 6.9%까지 낮췄고 퇴직연금 수령 시기 연장 및 세금 혜택으로 창업을 지원하는 등 국내 신규 일자리 창출에 성과를 내고 있다.

일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영국이 과감한 복지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복지 부담으로 인한 재정 적자와 고령화 사회의 현실을 감안할 때 지속가능한 복지체계가 되기 위해서는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공감을 얻지 않고는 정부가 아무리 강경한 입장일지라도 복지 개혁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2012년부터 도입된 자동등록퇴직연금제도, 상위 15% 고소득 계층에 대한 아동수당 삭감, 보편적 무상의료 원칙은 유지하되 환자선택권을 강화한 NHS구조개혁, 30가지 이상의 복잡한 복지급여 및 세액공제체계를 하나로 통합해 행정비용과 복지사기를 줄이기 위한 ‘유니버설 크레딧’ 도입 등 잘못된 복지시스템으로 양산된 ‘복지의존증’을 개선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복지시스템은 한 번 잘못 설계하면 되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대처 행정부와 블레어 행정부의 복지 개혁에 이어 ‘구직 노력을 안 하면 최대 3년간 수당을 주지 않겠다’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강력한 복지개혁안에 이르기까지 영국은 한 번 잘못 설계된 복지 시스템으로 인해 새로운 복지체계를 구축하는 데 1980년대부터 근 30년이 걸린 것이다.

영국 사례를 보면서 결국 우리도 복지문제에 대해 이제 근본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여와 야, 청와대, 둘로 나뉜 국민 각각의 생각보다는 우리 후세들의 미래가 먼저 고려돼야 한다. 또한 당장의 안위함을 추구하기보다는 각각의 희생과 양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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