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칠 전 어느 일간지에 모 대학 수학교육과 교수라는 이가 ‘뜨거운 감자’ 교과서 한자 병기를 논하며 “청소년들이 애용하는 ‘쩐다’라는 표현은 지극히 불만족스러운 상황에도, 경탄할 만큼 좋은 경우에도 쓰인다. 화자가 어떤 의미로 ‘쩐다’라고 했는지 청자는 맥락을 따라 적절하게 해석해야 한다.

 이처럼 하나의 표현을 다양한 의미로 변신시키는 현상은 청소년들만의 언어를 통해 유대감의 강화에서 비롯됐겠지만 어휘 부족도 한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다”라는 글을 읽으면서 이러한 생각이 기본적인 사안을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독자들에게 그릇된 영향을 미칠 것이기에 몇 자 기술해 보고자 한다.

‘쩐다’는 10여 년 전 피망 사이트 ‘스페셜포스(게임)’에서 나온 신조어로 한 가지 일에 능통한 것을 뜻한다. 그 활용 양상을 보면 ‘쩐다는 잘한다’, ‘쩌네요는 잘하네요’, ‘쩔어요는 잘해요’ 등으로 쓰이고 있다. 감정이 극에 달했을 때 쓰는 ‘죽인다(매우 좋다의 뜻으로도 쓰임)’와도 의미를 공유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못한다, 별로다’ 등의 부정적인 면에도 사용되는 경우가 있지만 언어의 효용적 측면에서 경제성을 바탕으로 한 다양성이라 평가할 수 있다.

 이처럼 ‘쩐다’라는 어휘는 게임상에서 얻어진 단어지만 인터넷이나 청소년들의 생활 속에 자리잡은 어엿한 언어의 한 식구가 된 것이다. 이제는 게임의 영역을 넘어서 인터넷상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신조어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이렇게 ‘쩐다’라는 어휘가 계층어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낱말 사용을 청소년들의 어휘 부족에서 기인한 것으로 몰아가며,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어휘력을 키워 줘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한자를 초등학교 교과서에 병기해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어는 개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언어가 사회구성원에게 인정을 받으며 생명을 얻게 된다. 그리고 언어정책은 그 민족의 생명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일제강점기 때의 우리말 지키기, 광복 이후의 한글 전용법, 국어기본법 등을 만들어 가면서 지켜온 우리 말글이 때 아닌 폭풍을 만나 또 소용돌이에 휩쓸릴 모양이다.

교육부에서 2018년부터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겠다는 방침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2015년 9월 새 교육과정 시안을 발표할 때 함께 논의할 것이라 하지만 이미 중·고등학교에서 한문 교과를 통해 한자를 배우고 있다. 필자도 초등학교 시절에 한자를 공부한 세대다.

한자 쓰기 숙제를 하느라 여간 고생한 것이 아니다. 이제는 그런 선생님은 안 계시겠지만…. 왜? 자꾸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 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초등학교에서도 영어를 배운다고 하자마자 어린이집·유치원에서 영어교육을 시키고 있으며, 심지어는 영어 전문 유치원까지 등장해 어린이들에게 멍에를 지우고 있다. 이처럼 하나의 정책이 낳는 부작용은 예상했던 것보다 커지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그 글에서 ‘한자는 배우고 익히는 것 중에서 후자 위주이므로 사교육이라 해도 학원보다는 학습지를 통해 익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고 사교육에 대해 가볍게 넘기려는 것을 보며 과연 그의 생각이 올바른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지난 3월 25일 국립국어원에서는 2013년 7월부터 2014년 6월까지의 사회상을 반영한 신조어 334개를 발표했다. 먼저 특정 행동 양상을 보이는 사람들의 무리를 가리키는 신조어로 ‘포비족, 뇌섹남, 파킹투자족’들과 사회, 경제, 통신 등 주제별 신조어로 ‘너곧나, 대프리카, 임금절벽’들과 감정을 표현하는 신조어로 ‘고급지다. 핵꿀잼, 심쿵’ 등을 들고 있다.

물론 언중들이 자주 사용하면 우리말사전에까지 등재될 것이다. 이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횡포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는 인터넷 포털상에 ‘새로 등록된 오픈 국어, 유행어·신조어 추천 백과’난까지 만들어 자유스럽게 새로운 말을 만들고 알리고 있는 실정이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에드워드 카아는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이들은 대립적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간에 보완해 주는 필요한 관계에 있는 것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기에 언어정책은 힘 있는 자가 그리고 그에게 동조하는 자가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옛부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는 말이 전해오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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