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MERS)’로 명명되는 중동호흡기증후군의 공포로 온 나라가 얼어붙었다. 국가적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야 하겠다.

 이러한 때에 발표된 OECD의 ‘2015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 조사에 따르면 어려울 때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는 최악의 나라로 조사 대상 36개국 가운데 한국이 꼽혔다는 소식이 우리를 더욱 씁쓸하게 하고 있다.

우리는 사람과 사람이 사귐에 있어 각종 사회적 관계를 중시한다고 하지만, 정작 어려울 때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잖아도 온갖 사건·사고로 국격(國格)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우리다. 각종 비리로 얼룩진 사회다. 잘못이 드러나면 그때 가서 모두가 다 네 탓이다. 함께 물에라도 빠지면 나 혼자만 살겠다고 헤엄쳐 나오는 사회다. 어려움이 닥치면 서로 위하고 나누던 미풍양속은 어디로 가고 이기심만이 가득 찬 사회가 됐다.

 한때 우리 사회 미덕(美德)이었던 향약(鄕約)의 4대 강목, 즉 덕업상권(德業相勸: 좋은 일은 서로 권한다), 과실상규(過失相規: 잘못은 서로 꾸짖어 준다), 예속상교(禮俗相交: 예의로써 서로 사귄다), 환난상휼(患難相恤: 어려운 일을 당하면 서로 돕는다)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백 가지, 천 가지 불행이 한꺼번에 다가왔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의지하고 믿을 곳이라곤 아무데도 없었다. 결국 헌 옷 하나 걸친 자신뿐이었다”라고 체념한 서양의 한 철학자도 있다. 이대로 나아간다면 물에 빠진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사회가 된다.

 하기야 의인(義人)이 불의를 참지 못하고 남의 싸움에 끼어들었다가 오히려 곤란을 겪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는 사회이니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주식형제(酒食兄弟)는 천개유(千個有)로되, 급난지붕(急難之朋)은 일개무(一個無)’라는 말이 있다. 술 마시고 밥 먹을 때 친구는 많다. 하지만 막상 어려움을 당했을 때의 친구는 그다지 많지 않다는 의미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 저잣거리에 나가 술친구들과 어울리며 돈을 흥청망청 쓰고 다녔다. 아버지가 하루는 “너는 친구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아들은 수백 명은 된다고 어깨를 으쓱하며 자랑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말하는 친구 중에 진정 의리 있는 친구가 몇 명이나 되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오늘밤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하고는 키우고 있던 돼지 한 마리를 잡아 거적에 싼 후 아들로 하여금 지게에 짊어지게 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했다. 친구 집 앞에 이르러 친구가 나오면 “내가 사람을 죽였으니 어디 하룻밤만 숨겨 달라”고 말하라고 했다. 그리고는 “네가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는 집부터 가 보자”고 했다.

아들은 그 무엇이 어렵겠느냐며 친하다고 생각되는 친구 집을 찾아갔다. 아들은 아버지가 시킨대로 “내가 어쩌다가 사람을 죽였으니 숨겨 달라”고 하자 친구는 기겁을 하며 대문을 걸어 잠그고 문전박대했다. 나머지 숱한 친구들의 집에 들렀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아들은 아버지 친구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하며 아버지 친구 집에 찾아가 보자고 했다.

아버지 친구 집에 이르러 아들 친구에게 말한 대로 아버지가 “내가 살인을 저질렀으니 하룻밤만 숨겨 달라”고 하자 어버지의 친구는 맨발로 뛰어나와 말하길 “친구, 어쩌다가 그런 일을 저질렀나! 누가 볼까봐 무서우니 어서 들어오게”하고는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사랑방에 들어서자 아버지는 아들이 지고 온 지게에 있던 돼지고기 짐을 내리게 하고 친구에게 전후의 일에 관해 설명을 했다. 아들에게 진정한 친구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기 위함이었다고.

예부터 군자(君子)의 사귐은 담백하기가 물과 같고, 소인(小人)의 사귐은 달콤하기가 꿀과 같다 했다. 오늘처럼 각박한 사회에서 좋은 인연으로 참된 친구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한다.

우리말에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다. 어려움을 당했을 때 가까운 이웃이 먼데 친척보다 낫다는 말이다. 먼 곳 하천의 물은 가까운데 불을 끌 수 없다. 가까이 있을 때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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