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식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객원논설위원

 “뉴스 극장으로 발족하였다가 광복 후 인천 영화의 전당이 된 동방극장(東邦劇場)은 정치국(丁致國)씨 사망 후 김윤복(金允福)씨가 축항사(築港舍)를 인계하여 홍사헌(洪思憲)씨에게 위임했던 것인데, 그는 광복 후 애관(愛館)과 작별하고 동방만을 직영하다가 객사했다.”

인천의 언론인이었던 고(故) 고일(高逸)선생의 기록이다. 불과 얼마 전에 사라진 인천의 유명 옛 영화관 동방극장의 내력에 대해 짤막하게 언급한 부분으로 선생이 생전에 발간한 「인천석금(仁川昔今)」 제23장 ‘인천 극장 영화관의 발전사’ 중 인천의 여러 극장, 영화관을 설명하는 내용 가운데에서 발췌, 인용했다. 먼저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인물에 대해 궁금해하실 것 같아 우선 그 설명부터 드린다.

정치국은 부산 출신이지만 인천에서 근업사(勤業社) 사장과 인천조선인상공회의소 회두(會頭)를 지낸 갑부였다. 중구 용동의 창고 건물을 개조해 애관극장의 전신인 협률사(協律舍)를 열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협률사는 후일 일시 축항사로 불리다가 1920년대 애관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김윤복은 일제 때 경찰을 지낸 인물로 광복 후 미군정에 의해 초대 인천경찰서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1936년 인천체육회 창립 당시에는 회장을 지냈다. 그는 2007년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올랐다.

실상 이 두 사람은 동방극장과는 직접 관련이 없고, 애관에서 동방극장으로 옮겨 경영을 맡았다가 후일 객사했다는 홍사헌이 주인공이지만 그에 대해서는 인적 사항이나 행적이 밝혀진 것이 없다.

 이 글에서 고일 선생이 동방극장의 개관 연도라도 밝혀 썼다면 그 연조(年條)는 확실히 알 수 있었을 터인데, 아쉬운 대로 그저 광복 이전이라는 것만 추측하게 된다.

동방극장에 대해서는 지난 3월 인천시립박물관 조우성 관장이 인천일보에 간략히 쓴 바 있다. “며칠 전에 보니 외환은행 인천지점 바로 뒤편에 있던 동방극장의 옛 건물이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가 평지가 되어 있었다. 문득 옛 정경이 바람처럼 스쳐간다”고 했다.

그러나 조 관장이 쓴 내용 중 내부 바닥이 아니라 극장 안 양옆에 선 기둥들과 벽이 ‘엄지손톱보다 좀 큰 청색 타일’을 입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1인용 의자는 폭이 좁은데다가 스프링이 튀어나온 곳이 많아 불편했고, 검은 커튼 뒤에 있던 화장실에서는 불쾌한 냄새가 솔솔 풍겨 나와 관람객의 인내를 요구했었다”는 내용은 그의 말대로 가슴속으로 ‘문득 옛 정경이 바람처럼 스쳐’ 가게 한다.

처음 이 극장에 들어간 것은 1963년으로 극장 문 앞에서 표를 받는 ‘기도’ 아저씨의 너그러운 묵인 아래 제임스 본드 영화 첫 작품인 ‘007 위기일발’을 보던 때였다. 그 후 ‘빅 칸츄리’니 ‘샤레이드’니 ‘누구에게 줄까요’ 따위의 개봉 외화를 교외 지도 선생님과 임검 순경 눈을 피해 조마조마 감상할 수 있었다. 아마 우리 나이 또래라면 동방극장에서의 이런 추억을 틀림없이 공유하리라는 생각이다.

그런 향수 어린 극장이 이제는 헐려 자취도 없고 그저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는 상가 주차장이 되고 말았다. 이 극장을 살려 소박하나마 ‘인천영화박물관’ 혹은 ‘인천영화기념관’으로 활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특히 인천 영화사(映畵史)가 그렇게 빈약한 것도 아니어서 더욱 아쉽고 유감스럽다.

인천은 일제 때 활약하던 한국 최고의 호남 배우 서일성(徐一星), 나운규(羅雲奎)의 애인이었던 용동 권번 출신 여배우 유신방(柳新芳), 그리고 황정순(黃貞順), 도금봉(都琴峰), 장동휘(張東暉) 등 대한민국 최고 배우들의 출신지이고, 광복 후 영화 제작자로는 인천 출신 영화배우 최불암(崔佛巖)의 선친인 최철((崔鐵), 이승하 등과 작가 조수일(趙守逸), 최성연(崔聖淵) 같은 분들이 맹활약한 곳이었다.

한때 용동 권번에 몸을 담았던 여배우 복혜숙(卜惠淑)도 인천과 연고를 가지니 이들을 바탕으로 얼마든지 영화기념관 하나는 이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현역 배우는 얼마나 많은가. 진실로 유감이다.

인천의 정체 확인과 가치 재정립은 이런 것이고 백년, 천년 후손에게 물릴 문화유산은 바로 이런 것인데, 지역의 장(長)이나 구민들 누구 하나 아쉬워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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