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세국 몽골 ‘인천 희망의 숲’추진위원회 실행위원장

 몽골에 조성하는 ‘인천 희망의 숲’에 이제 9만 그루가 넘는 나무가 자라고 있다. 특히 이번 활동 기간(5월 20~24일)에는 우리가 준비한 7천 그루 외에 몽골 정부가 9천 그루의 나무를 기증했다. 몽골 정부가 6천400km 그린벨트 계획의 하나로 올해 총 예산 3억여 원 중 약 10%를 이곳에 투여한 것이다.

연 12% 이상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몽골은 사회기반을 닦는데 모든 예산을 집중하고 있어 그린벨트 계획은 형식적인 면에 그치고 있으나 그나마 이런 형태의 성의를 보여줘서 다행이다. 먼 나라에서 거금을 들여 조성하는 숲보다는 몽골 자체의 능동적인 활동에 더 기대를 하는 게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몽골은 역사·문화적으로 다양한 관계를 맺어왔다. 13세기 몽골의 침입과 방어를 비롯해 얼마 전 방영된 ‘기황후’도 이와 연계된 콘텐츠다. 정식 국교는 1990년 3월에 수립됐고 1999년 김대중, 2006년 노무현, 2011년 이명박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양국은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 다방면에서 교류하게 됐다.

현재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몽골 학생은 2천 명이 넘고 있다. 매년 몽골과 한국을 방문하는 4만여 명은 이런 교류를 나타내는 지표다. 이런 교류는 최근에만 있었던 일은 아니다.

 몽골 ‘인천 희망의 숲’ 자원봉사 활동단은 방문 시마다 ‘이태준 기념공원’에 참배하고 있다. ‘이태준 기념공원’은 2011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이 몽골 방문 시에도 참배했던 곳으로 울란바토르 동쪽 톨 강가 6천600여㎡에 세워진 공원이다.

지금 몽골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촌이 형성돼 소위 ‘몽골의 강남’으로 부르는 신흥 부자동네로 주목받는 지역으로 1994년 7월 연세의료원과 울란바토르시가 반씩 투자해 건립했다.

큰 바위(大岩: 대암) 이태준 선생은 항일 애국지사 중 한 분으로 본관이 인주(인천) 이 씨, 1883년 경남 함안군에서 태어났다. 질병으로 부인을 잃은 선생은 상경해 서울역 앞 세브란스 병원 앞에 있던 김형제상회(안창호 등 독립지사의 비밀회합 장소)에 취직했고 1909년 말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사건으로 체포됐다가 1910년 석방돼 1911년 6월 세브란스 의학교를 졸업했다.

선생은 105인 사건으로 만주를 거쳐 몽골에 입국하게 된다. 당시 청나라는 성병을 창궐시켜 몽골족을 말살시키려 했고 이에 대암 선생은 성병 전문의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또 몽골의 마지막 왕인 보그드칸 8세의 어의로 헌신 봉사했다.

그러나 1921년 러시아군에 처형됐으며 시신은 현재 기념관이 있는 보그드산(자이승 전승 기념탑 포함) 근처에 있다고 하나 찾지 못하고 기념관과 가묘로 대신하고 있다. 일제치하 독립운동을 위해, 몽골인들의 질병 퇴치를 위해 헌신했던 분이 대암 선생이다.

이 기념관을 건립하려 뛰어다닌 분은 전의철 박사다. 세브란스 출신 의사로 인천기독병원에서 외과의사로 있다가 주안역 앞에 인천세광병원(현재는 인천사랑병원) 원장이 되신 분으로 1994년 몽골로 가 ‘몽골연세친선병원’을 열었다. 전 박사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지금의 기념공원이 세워졌고 자이승전쟁 기념탑을 오르내리는 모든 관광객, 특히 한국인은 대암 선생의 기념공원을 지나치지 않도록 조성했다.

‘몽골연세친선병원’은 몽골 상공회의소가 주는 우수업체 표창을 받을 정도로 주민을 위한 병원이었다. 이번에 함께한 자원 활동가들도 이 기념관에 들러 우리 민족 헌신의 현장을 봤다. 비록 자이승 전망대에 올라가 울란바토르를 한 눈에 보지 못해 섭섭했지만 더 큰 가슴의 여운을 담기에 충분한 기회가 됐다.

진지하게 기념관을 둘러보는 중학생, 실제로 모든 전시물을 촬영하시는 분, 하나하나 다 읽으신 분들의 눈에 비친 선생의 모습이 얼마나 오래 간직될 것인지 상상하기도 했다. 황사를 막기 위해 추진한 몽골 ‘인천 희망의 숲’ 조성이지만 가슴과 가슴을 잇는 것이 어떤 것보다 중요한 일임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대암 선생이 몽골에 간 첫 번째 의사라면 전의철 박사는 두 번째 한국인 의사였다. 현재 전 박사는 뇌졸중으로 인해 몸이 자유롭지 않지만 자신의 회고록 「나의 갈길 다 가도록(고인이 된 부인 김광신 장로 공저)」을 통해 몽골 생활을 담담하게 정리해 두셨다.

2007년 몽골에 가 처음 찾았던 대암 선생 기념관을 전 박사가 정성 들여 발굴하고 또 건립했다는 정보를 접하고 꼭 찾아뵙고 싶었다가 지난 5월 초 공주의 한 양로원에 계시는 전 박사께 몽골 관련 말씀을 드릴 수 있었다. 환한 얼굴로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뵈니 왠지 나도 조그마한 부담을 덜어드린 것 같아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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