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희선 교육정책포럼 대표

 한국에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개념이 국정목표로 등장한 것은 1994년 11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APEC 정상회담에 다녀온 직후였다. 그 이전에는 국제화라는 개념이 오래전부터 사용됐고, 1980년 초 등장한 지구촌(Global Village)이란 개념과 함께 세계화라는 개념이 혼용됐지만 정책적 개념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94년인 셈이다.

정보통신의 발달과 함께 1980년대 초 ‘지구촌’이란 개념과 동구 공산권의 붕괴와 함께 불기 시작한 ‘세계화’란 개념 간에는 그 의미상 차이가 있다. 지구촌이란 개념은 세계가 장벽들을 허물고 하나의 마을단위가 돼 그 속에서 한마을 사람들처럼 오손도손하게 살자는 일종의 세계동포주의적인 이상을 담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라는 개념에는 경쟁 의미가 강하게 함축돼 있다. 세계화가 세계를 하나의 광장으로,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에 그 시장에서는 국내 제일이라는 의미보다 세계 제일의 의미를 더 강조한다. 경쟁력이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경쟁력은 근본적으로 교육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에 교육에서의 경쟁력, 경쟁력 있는 교육이 시급한 과제가 된다. 특히 경쟁력 있는 대학교육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를 위해 양적인 교육에서 질적인 교육으로의 전환과 수월성 있는 교육과 연구력을 지닌 우수한 교수의 확보 등 다각적인 노력이 요구되지만 특히 대학의 특성화가 거론돼 왔다.

 물론 모든 대학들이 그 대학 안의 모든 학문 분야를 수월성 있게 만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겠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재원이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대학들이 그 대학의 여건을 고려해 특정 분야를 선택, 집중 투자하면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고, 그 경쟁력들을 합하면 국가의 경쟁력도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투자의 분산에서 집중으로 대학의 경쟁력을 이끌어 내자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70여 년 동안 대학들은 특성화 없는 대학 운영을 했고 그렇게 할 여건도,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모든 분야가 생긴 지 일천해 열악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특정 분야에 집중 투자할 여건이 되지 못했고, 졸업생들이 별 어려움 없이 취업됐기 때문에 특성화의 필요성이 절박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의 대학들은 가능한 모든 학과들을 설치해 학생 수에 비례해 투자함으로써 특성화하지 못했고, 다른 대학과 구별되지 않는 ‘백화점’이 됐다는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1970년대 후반에 정부 주도로 대학을 특성화해 대학에 따라 예컨대 기계공학이나 화학공학 또는 전자공학 등을 특성화하고 학생 정원의 증가나 재정 지원을 했지만 그 정권이 갑자기 막을 내리면서 그 정책은 용두사미가 됐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정책의 효과는 아직도 그 대학들에 남아 숨쉬고 있다. 현재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특성화 정책은 이와는 거리가 먼 당면 구조조정에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의 대학들이 오랫동안 특성 있는 전문점이 아니고 백화점식으로 운영돼 왔다. 그래서 한국의 학생은 대학을 선택할 때 대학 명을 보지만 독일의 학생은 교수를 보고, 미국의 학생은 학과를 보고 대학을 선택한다는 말이 항간에 널리 떠돌았다.

자기가 전공하려는 대학에 어떤 교수가 있는지, 그 학과가 어떤 특성의 학과인지 모르면서 다만 대학의 이름만 보고 대학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 형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대학들이 특성 없는 대학으로 운영돼 왔음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 대학들도 이제는 특성화할 여건도 됐고, 경쟁을 수반한 세계화의 파고도 높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대학의 특성화가 절실하다고 본다. 물론 대학의 특성화가 용이한 일은 아니다.

지난 60여 년 동안 형성된 각 학문중심주의를 극복해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특성화에 따른 집중 투자도 어려운 일이다. 나아가서 어떤 분야를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특성화할 것이냐에 지혜가 필요하다. 어떻든 올바른 대학의 특성화를 위해 정부의 재정 지원은 필수적이다.

 정부의 지원이 있을 때는 대학 자체 특성화로의 집중 투자 부담도 다소 줄게 되고, 그 지원을 놓칠 수 없다는 명분으로 특성화 추진을 강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대학의 재원만으로는 역부족이기 때문에 정부의 재정 지원은 불가피한 것이다.

정부는 대학의 특성화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는 일이 대학의 경쟁력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는 사실을 재인식하고, 보다 강력하고 효율적으로 지원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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