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식 ㈔인천서구발전협의회 회장

 나이 든 사람들은 편안한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노인들은 보수적이다. 80년이 넘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일을 겪다 보니 의사결정을 할 때도 고려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노인이 되면 말이 길어진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까닭이다.

반면 기억력이 떨어져 이미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와 같은 노인의 특성을 젊은 사람들은 싫어한다. 6·25 때 피난 간 이야기는 말하는 사람에게는 신나는 일이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보릿고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귀가 따갑도록 들어서 알르레기 반응을 보이게 돼 세대 간 대화가 힘들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관점을 조금만 바꿔 보자. 젊은 사람 역시 자신도 언젠가는 나이 먹는다는 것을 인정하면 노인에 대한 태도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오늘 답답하게 보이는 노인의 모습이 미래 자신의 모습이라 생각해 보라. 노인을 이해하고 편안하게 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노자안지(老者安之) 붕우신지(朋友信之) 소자회지(小者懷之) 노인은 편안하게 해 주고 친구에게는 믿음을 주고 젊은이는 감싸 줘라. 이 글은 공자(公子)가 일생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 할 좌우명으로 제시한 글로, 세대 간 갈등이 깊어지는 요즘 사회에 꼭 필요한 글이 아닐까 해서 옮겨 봤다.

아무리 현대 문명의 신속과 편리에 길들여졌다 해도 역시 경험은 소중하다. 노인을 인생의 스승으로 삼고 자문을 구하면 무한한 지혜를 공급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노인은 누구인가. 바로 내 부모와 직장의 상사와 학교 선배, 그리고 지역의 어르신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이분들을 편안하게 해 주는 태도를 삶의 중요한 목표로 삼고 노력하면 세상은 더욱 밝아지고 그 보상은 자신에게 먼저 돌아오게 될 것이다. 노인들이 아무리 젊은이들과 다른 주장을 한다 해도, 또한 다르게 표현한다고 해도 이분들은 현재의 젊은이들을 낳고 키워 준 분들이다.

지금 젊은이들이 노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이 세상에서 자기 주장을 펼치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라. 그렇다고 노인들도 젊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람이란 각자 다른 가치관과 인생관이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과 생각이 다를 때는 왜 그런지 한 번 물어보고 항상 젊은 사람을 만나면 강의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대화를 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강의는 일방적이지만 대화는 쌍방 통행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노인들의 고리타분한 강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론 때로는 젊은이가 다소 건방지게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젊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야 한다. 나도 젊었을 때 그렇게 살아왔다고 생각하면 답은 나온다. 옛날 어른들의 말씀에 벼는 익으면 고개를 절로 숙인다고 했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벼는 고개를 숙이기 직전까지 가장 꼿꼿한 자세로 서 있는 단계를 거쳤다는 점이다.

사실 오늘의 노인세대는 어디로 보나 과도기적으로 불행한 세대이다. 경제적으로 빈궁한 시절에 경제성장을 위한 주역으로 많은 희생을 해 온 노인들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젊은이들에게 호혜원칙에 입각한 부모세대를 책임지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젊은이들은 나이 많은 노인들보다 훨씬 많이 알고 창의적이며 자신감에 넘쳐 있다. 젊은이들의 패기와 자신감이 나라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도록 나이 많은 노인들이 도와줘야 한다. 그래서 수준 높은 사회적 평등을 유지하면서 경제 발전을 이룩해야 할 것이다.

생각이 젊으면 나이를 많이 먹어도 젊은 것이다. 그래서 영원한 노인이나 영원한 젊음이란 없다는 생각이다. 다만 상대적 노인과 상대적인 젊은이가 있을 뿐이다. 노년과 장년과 청년세대가 역지사지의 자세로 상대방에게 평안과 믿음의 관용을 베풀 때 개인의 참다운 성공이 보장될 뿐만 아니라 더욱 성숙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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