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장원 인천재능대학교 평생교육원장

 바야흐로 요리하는 남자의 전성시대이다. 거의 매일 요리 프로그램이 공중파와 종편을 가리지 않고 TV 화면을 장식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방송을 통해 접하게 되는 요리 프로그램은 유명 요리연구자가 레시피에 따라 요리를 진행하면 연예인이 옆에서 보조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방송 내용도 흥미보다는 강의 형태로 짜여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가 필요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 선보이는 요리 프로그램은 사뭇 다른 방식으로 진행돼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특이한 점은 유명 요리사나 주부가 아니라, 남성 탤런트나 PD와 같이 평소 요리와는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사람이 출연자로 등장해 평소 집에서 먹는 음식을 만들어 간다는 점이다.

그동안 요리에 관한 한 문외한으로 치부됐던 일반 남성이 진행하는 요리가 이처럼 방송가의 핵심 이슈로 등장한 것은 시대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독일과 같은 유럽에서는 1960년대에 이미 남성 요리가 보편적인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았고, 일본에서는 1970년대에 접어들어 남성 요리책 출판 붐이 일어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990년대부터 남성이 밥상을 차리는 사례가 늘어났지만, 이때만 해도 맞벌이 부부의 가사 분담을 위한 목적이 컸다.

그러나 최근에 나타난 요리하는 남성의 증가 현상은 사뭇 다른 징후를 보인다. 가장 큰 차이는 단순히 끼니를 때우기 위한 요리가 아니라 요리를 통해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성을 표현하는 형태로 전개된다는 점이다.

요리하는 남성의 증가에 따라 구매 패턴에서도 변화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한 온라인 쇼핑몰이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성 가입자의 주방용품 구매량이 지난해보다 31%가량 늘어났고, 덩달아 요리 재료 구매량도 증가했다고 한다.

이와 함께 요리 관련 서적도 변화하고 있다. 요리법을 다룬 책에서부터 요리의 역사, 문명 발달과 요리와의 관계 등 문화사적 관점에서 요리를 심층적으로 분석한 내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성의 부엌 출입을 금기시하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의식 변화임을 느낄 수 있다.

흔히 사람과 동물의 차이를 도구의 사용 여부로 구분하지만,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도 있다는 점에서 이는 명확한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음식의 요리 여부를 놓고 생각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인류와 요리의 관계를 연구한 많은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인류는 요리를 통해 문명을 발전시켜 왔고, 지금과 같은 사람으로 진화됐다고 한다.

 최근에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요리가 이성의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 미국에서는 요리가 데이트 코스로 정착되고, 요리로 이성을 유혹한다는 뜻의 ‘Culinary Seduction’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이는 요리가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남성이 가족들과의 유대를 위해 혹은 이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주방 앞에 선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처럼 요리에 대한 남성의 관심이 뜨겁다 보니 이들을 위한 요리강좌도 곳곳에서 개설되고 있다. 하루의 업무를 마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참가한 강좌에서 서툰 칼질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이는 남성들은 이 시대의 진정한 ‘상남자’들이다.

지금까지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청춘을 불사른 중장년 남성들이 진지한 모습으로 강의를 경청하고 요리 실습에 임하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평생교육 현장에서 평생교육과 요리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돼 기쁘다. 올 가을에는 나도 요리하는 남성이 돼 주변 사람들에게 정성이 담긴 밥 한 끼를 대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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