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 기념 리셉션에 교차 참석했다. 양국 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면서 정상회담의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한 차례의 정상회담도 이뤄지지 않은 기이한 외교정책에 변화가 오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 아는 대로다. 우리 정부는 위안부 문제 등과 같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 강경 입장을 고수해 왔다. 이에 맞서 일본은 역사 왜곡은 물론 독도에 대한 영유권까지 주장했다.

두 정부의 경색 관계는 반일감정과 혐한행동으로 이어졌다. 민간 교류도 위축됐다. 엔저 현상을 타고 중국 관광객들이 일본을 더 선호하고 있다.

 한편 아베정부는 중국과의 영토 분쟁, 북한 핵, 자연재해 대비 등을 내세우면서 일본판 NSC를 만들었다. 그리고 위헌 논쟁에도 불구하고 집단자위권 행사를 핵심으로 하는 평화헌법 제9조의 개정에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박 대통령의 문제 인식의 깊이는 알 수 없다. 그나마 ‘양국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해 나선 것은 다행이다.

물론 우리 정부는 일본이 과거 침략과 식민지배와 관련한 사죄와 반성 등을 기대하고 있다. 만약 그것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양국 간 정상회담도 매우 어려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기 때문이다. 향후 한일 외교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그에 기초하고 있다.

일부에서 우려하는 사태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최근 방일에서도 나타났다. 4년 만에 일본에 도착한 그를 맞이한 것은 혐한 시위대였다.

 일본의 우익단체들이 윤 장관이 도착한 하네다공항 근처와 숙소인 도쿄호텔 앞 등에서 현수막을 들고 반한 시위를 벌였던 것이다. 물론 대환영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곳곳을 쫓아다니면서 벌이는 일본 우익들의 반한 시위는 그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 참으로 우려스럽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른바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재특회)’이 있다. 재특회는 재일 한국인(조선인)이 가지고 있는 특권을 일본에서 없앨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자칭 행동하는 우익단체이다.

2006년에 설립돼 회원 수가 1만 명을 넘는다.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는 재일 한국인이나 중국인에 대한 차별적인 글들이 넘쳐난다. 한국인을 일방적으로 비방하는 ‘혐한류(嫌韓流)’라는 만화책은 누계 발행 부수가 100만 부를 넘었다. 그리고 그들의 표적이 점차 외국인이나 그 가족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가장 큰 특권을 누리고 있는 주일 미군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하다. 그들이 미군 기지에서 시위를 벌이거나 아메리칸 스쿨의 교문 앞에서 학생들을 위협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재일 동포나 아시아인들이 일본에 강제로 머물게 된 것은 그들이 일으킨 식민지 정책과 전쟁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에게 인종차별과 헤이트 스피치를 서슴없이 감행하고 있다. 문제는 ‘아시아 해방을 위한 전쟁’으로 미화하는 반역사적이고 반인권적인 인식이 우익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본 사회에서는 외국인 배척주의 운동이 세력을 그 확대하고, 그에 편승하는 언론과 정치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정상회담의 장소로 제주도가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만약 박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게 되면 우익단체들이 벌이고 있는 외국인 배척주의의 현장을 맨 먼저 방문하기를 권한다. 동포들을 호텔로 불러모을 것이 아니라 도쿄의 신오쿠보(新大久保)를 직접 방문해 그들을 위로하는 일이 우선이다.

그리고 침략의 역사가 현재도 진행 중이라는 것을, 재특회가 갈수록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회에서는 화해와 상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민족 차별이 아니라 공존하는 방법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국제법적 규범이 아니라 국민적 감정을 외교정책의 수단으로 삼는다면 아베 총리가 말하는 ‘새로운 시대’란 말의 성찬일 뿐이라는 것을.

일본의 양식 있는 시민단체와 지식인 그리고 정부와 언론을 향해 당당하게 말해야 한다. 시원한 호텔의 테이블이 아니라 뜨거운 현장에 답이 있다. 리더로서 동포와 인류애를 실천하고, 인권 보호를 위해 당당히 나서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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