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호림 인천대 영어교육과 강사

 현재 지구상에 남아 있는 언어의 수는 약 7천 개를 넘는다고 한다. 수천 년 전부터 언어는 사라져 왔고, 현재의 소멸률이 지속된다면 2100년께에는 대부분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노인들만이 사용하고 후세에는 전해지지 않는 죽은 언어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언어는 한 국가의 사상을 담는 그릇으로 그 소멸은 문화와 정체성의 소멸이 되기도 한다.

 한때 한국어도 일제강점기가 계속됐더라면 그러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 2014년 언어 관련 공식 통계자료를 제공하고 있는 사이트(www.ethnologue.com)에 따르면 한국어 사용자는 7천720만 명으로 세계 언어사용자 중 13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 나라의 언어가 그 순수성을 지켜가기 매우 어려운 글로벌 환경이 오늘날의 현실이 됐다. 외래문화와 함께 따라온 외래어의 무분별한 도입과 그 사용이 원인이다. 흔히 높은 문화와 패권국가의 언어가 주변 국가의 외래어로 편입된다. 영어 어휘에도 라틴어와 그리스어와 독일어, 프랑스어가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며 한국어에서도 중국어의 영향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전문용어의 외래어 사용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아무런 고민 없이 사용하는 가벼운 유행 성향의 외래어는 문제가 있다. 청라신도시의 ‘루비로’, ‘에메랄드로’, ‘크리스탈로’라든지 송도의 ‘아카데미로’, ‘하모니로’, ‘컨벤시아로’와 같은 지명 사용은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도로 이름만 외래어로 표시했다고 국제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국적 불명의 신조어는 우리 국어를 어지럽게 훼손시키고 있다.

근대화시대에는 일본에서 들어온 하이칼라(High Collar)란 정체불명의 말이 유행했다. 일본 메이지 유신시대에 서양식 유행을 따르던 멋쟁이를 일컫던 말이라고 한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가든(Garden)이란 영어가 외래어 간판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가든’을 정원이 아니라 ‘고기 굽는 집’의 대명사로 알고 있을 것이다. 골목 좁은 길에도 ‘가든’ 간판을 단 음식점을 쉽게 볼 수 있다. 아마 보릿고개 시대에 마음껏 고기를 먹고 싶은 서민들의 욕망이 ‘가든’이란 외래어를 선호했는지도 모른다.

배고픔이 어느 정도 충족돼서인지 사람들은 휴가를 즐기기 시작했고, 1960대에 바캉스(Vacance)란 프랑스어가 ‘여름휴가’를 대신했다. 2000년에 들어서자 높아진 국민소득과 함께 삶의 방식을 바꾸는 현상이 일어났다. 더욱이 2002년 외국 라이선스 계열의 여성잡지들이 선진국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소개하면서 스파, 피트니스클럽, 비싼 유기농 식재료와 친환경 상품이 웰빙산업을 주도했다.

 웰빙의 사전적 의미는 복지, 안녕, 행복 등을 의미하지만 물질적 가치나 명예를 위해 달려가는 삶보다는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유지하는 균형 있는 삶을 행복의 척도로 삼으며 이러한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을 웰빙족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삶의 문화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줄 알았으나 갑자기 멘붕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정신(Mental)의 붕괴(Breakdown)라는 줄임말로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상황을 뜻한다고 한다. 이러한 정신적 외상인 트라우마(trauma)를 치유하기 위해서인지 힐링(Healing)이란 외래어가 때맞춰 들어와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상의 치유담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학술적으로도 2007~2015년 ‘몸과 마음의 치유와 회복’에 관한 석사논문이 115건에 달한다.

오래전부터 종교계에서도 내적 치유를 통해 인격과 성격의 변화를 회복하는 일들을 훈련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심리적인 위로의 말로 치유한다는 속임은 없어져야 한다. 젊은이들에게는 환난과 고난의 시련 앞에서 묵묵히 당해 낼 수 있는 힘을 북돋아 주는 격려를 해야 한다.

젊은이들만 아픈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아프기 때문에 힐링이란 얄팍한 상술에 속아서는 안 된다.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란 우리 동요 노랫말을 기억하자. “우리 가는 길이 결코 쉽지 않고 모두가 힘들고 때로는 좌절하지만 친구들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다”고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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