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프랑스 디자이너 코코 샤넬이 탄생시킨 명품브랜드 ‘샤넬’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흠모하는 패션 하우스의 대명사다. 1920년대 그녀는 신체를 옥죄는 갑갑한 코르셋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키는 파격적인 검은색 드레스를 선보이게 되고, 전설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녀와 동시대를 산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20세기 러시아를 대표하는 음악가다. 틀에 박힌 전통과 관습 아래 안주하던 클래식 음악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기점으로 변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스트라빈스키는 변칙적인 멜로디와 복잡하고 강렬한 리듬으로 현대음악의 새 시대를 연 전위적인 음악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렇듯 시대를 앞서간 혁명적인 두 예술가의 만남은 어떠했을까? 익히 우리에게 잘 알려진 두 명의 인물과 그들의 알려지지 않은 사생활을 그린 영화 ‘샤넬과 스트라빈스키’를 만나보자.

1913년 파리의 샹제리제 극장에는 각계 저명인사와 멋쟁이들로 초만원을 이뤘다. 불이 꺼지고 뒤이어 공연이 시작됐다. 그 시작은 여느 공연과 다를 바 없이 매끄럽게 진행되는 듯했으나, 이런 안도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먼저 기괴하고 불편한 선율이 관객의 심기를 건드렸다. 뒤이어 발레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원시적인 움직임이 무대를 채워갔다.

그리고 ‘봄의 제전’이라는 타이틀과 연결시키기 어려울 만큼 섬뜩한 죽음의 메시지가 범람했다. 공연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난생처음 보고 듣는 해괴한 분위기에 관객의 불만은 사방에서 터져 나왔고, 급기야 고성과 야유, 각종 소음이 뒤엉킨 난장판 속에 공연은 막을 내렸다. 희대의 문제작 초연 공연 때, 코코 샤넬은 조용히 앉아 이 모든 광경을 바라봤다. 그의 재능은 그녀를 자극시켰다.

그리고 7년 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재능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던 샤넬은 스트라빈스키를 다시 만나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등으로 고국을 떠나 힘겨운 망명생활을 하는 스트라빈스키의 후원자가 되면서 예술적 공감대로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은 발전하게 된다.

 이후 복잡한 사랑의 감정은 그들을 대표하는 ‘샤넬 No.5’ 향수와 ‘봄의 제전’ 개정 곡이 완성되는 과정과 함께 나란히 보여진다. 창작의 동인이 된 그들의 사랑은 그러나 불륜이라는 꼬리표 속에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을까?

영화 ‘샤넬과 스트라빈스키’는 세기의 예술가들의 비밀스러운 사랑과 그 속에 녹아있는 작품이야기로 강한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들의 로맨스는 정설로 굳어진 스캔들이라기 보다는 샤넬이 노후에 회고한 이야기를 영국의 작가 크리스 그린홀즈가 소설화한 ‘코코와 이고르’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 줄거리는 일정 부분 픽션이 가미된 허구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오프닝에 등장하는 ‘봄의 제전’ 초연 장면의 재현은 놀랍도록 자세히 그려져 있어 이들의 파격적인 행보와 예술가적 동질감 등을 단적으로 보여주기에 충분한 이미지를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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