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락기 時調시인

 요즈음 야단이다. 철천지원수보다 더한 놈이 이 세상에 나타났다. 이 지구별의 지배자(?)인 인간이 겁을 먹고 있다. 목숨까지 뺏어간다. 인간은 이 땅의 주인공이라고 자인하는 존재다. 여기에 육신으로 태어났다 가는 존재다. 그런데 왜 이리 허약해 보이는가?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는 존재, 저 중동에서 왔다는 메르스란 바이러스 앞에 마냥 무너지다니! 이 바이러스란 무엇인가?

바이러스란 원래 세균보다도 엄청 작은 병원체란다. 천연두, 광우병, 사스, 에이즈, 다 사람이 붙인 이름. 인간이 치료법을 내놓아도 어느새 다른 모습으로 바꾸고서 가만히 지켜보다가 저의 숙주(인간)들의 처절한 대처가 이제 식었겠지 싶으면, 쥐들을 어르고 놀리다가 잡아먹는 고양이처럼, 숙주들이 별일 없다는 듯이 착각에 빠질 때를 기다려 어김없이 슬슬 나타나는 변신의 달인, 신종병증 발생… 차라리 투항하여 함께 해.

저들의 속내가 곧 내 속내가 되는 하나의 마음으로 합치지 그래. 덕산의 방과 임제의 할이 절실하이. 이 무망한 점령지, 은산철벽 앞에 부활의 출구는 진정 없는가.

이는 2008년도에 내놓은 본인의 시조집 「삼라만상」에 실은 우정 실은 산문시 한 편 ‘바이러스’란 제목의 일부 내용을 편집한 것이다.

그러면 시조(時調)란 또 무엇인가? 약 천 년 정도의 역사를 가진 한국의 고유한 시가(詩歌)라 하겠다. 어쩌면 지구별 탄생과 함께 살아왔을지도 모르는 바이러스에 비하면 그 역사는 일천하지만, 저 중국의 한시처럼 한국만이 가진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메르스는 바이러스의 그 긴 역사만큼이나 자랑스럽지도 않고 우리만의 고유성도 없다.

시조의 이러한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세계인의 관심에는 아직 한참 멀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만도 일반서민 속으로 널리 파고들지 못했으니 말이다.

시조가 죽든지 살든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식도 없고, 일부 사람들의 관심 속에만 머무를 뿐이다. 이에 비하여, 메르스는 이 시대의 한 변형된 바이러스로서 잠시 기능하였어도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아니 온 세계가 관심을 갖고 있다.

자, 그러면 인간은 둘 중 누구와 친해질 것인가? 불안한 정서를 순화시키고 필요해서 부르면 어디선가 달려오는 것과 부르지 않아도 몸의 약점을 찾아 침범하는 것 가운데 그 선택은 자명하다.

이렇게 인간에게 유익한 존재임에도 시조는 아직 홀대받고 있다. 시조의 세계화를 운운하는 터에 우리나라 안에서조차 이 값진 전통유산을 아끼고 보급하고자 하는 시동이 아직 본격적으로 걸리지 않았다.

 본인이 맡고 있는 한국시조문학진흥회에서도 미력하나마 이를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하나의 민간 문화예술 봉사단체로서 한계가 있다.

기껏해야 내가 거주하는 충주지역의 지방신문에 그곳 명승지나 명인 관련 예찬시조를 연재하거나, 수안보상록호텔을 활용하는 문예단체나 개인에게 시조를 알리고 창작·보급에 동참토록 하는 정도이다. 어쩌면 이 나라의 문화예술당국이 앞장서서 해야 할 일이다.

 각자 자기의 본업을 유지하면서 시조 동호인으로서 뜻을 모아 그 회비와 후원금만으로 운영하는 문예단체로서는 아무래도 진척이 더딜 수밖에 없다.

올 2월에는 경기도 일산지역에 문화창조융합센터가 개소되었다. 그때 대통령도 참석하신 걸로 안다. 이른바 21C 연금술이라는 문화콘텐츠산업의 육성을 위해서다. 관광, 의류, 제조업 등의 산업이 창작자, 전문가 그룹이 참여하여 예술로 융합, 발전한다는 거다. 한류와 관련시킨다는 거다.

그런데 여기에 정작 우리 시조는 왜 참여할 수 없는가? 한류를 대표할 수 있는 차원 높은 우리 시가인데 말이다. 이미 세계화된 하이쿠처럼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 미국과 중국 등 외국에서 시조를 지어 한국시조문학진흥회에 보내오는 분들이 지금도 계시다.

이도 우리 시조의 세계화를 위한 기반 조성의 하나다. 세계 곳곳에서 작은 물길이 모일 때 언젠가는 큰 바다가 된다.

요즘 문학작품의 표절문제로 문단권력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 우리 시조문학진흥회는 문단권력을 지향하지도 할 수도 없다. 우리 국민 누구든지 아니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모두에게 문호가 개방되어 있다. 시조를 가까이 하고 싶다면 누구라도 좋으니 문을 두드리시라.

 온 세계인이 한글로 시조를 한 수씩 읊조리는 날을 기대해본다. 메르스와 시조는 본질적으로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작금 최고의 관심사인 메르스에 빗대어 앞으로 최고의 관심사가 되어야 할 시조를 불러왔다. 메르스야 가라! 시조야, 우리 인간 모두의 품안으로 달려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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