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석 인천대 교수

 최근 세월호법 제정과 국회법 개정을 둘러싸고 여당과 야당, 청와대와 정치권, 그리고 여당 안의 갈등이 증폭됨에 따라 국회선진화법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른바 ‘국회선진화법 원죄론’이다.

국회선진화법은 하나의 절차법에 불과하지만 현재 헌법 버금가는 아헌법(亞憲法)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헌법 격인 국회선진화법 출현 후의 입법과정을 보면, ‘국회선진화법 원죄론’은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오죽하면, 국회선진화법은 ‘국회후진화법’,  ‘국회마비법’, 심지어 ‘망국법’이라고 세속에서 비아냥대겠는가. 국회가 국민의 동의 없이 아헌법과 같은 법을 제정할 권능이 있는가 라는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국회선진화법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법이다.

국회선진화법은 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엄격히 제한하는 대신 의사진행을 방해하기 위해 자행되는 국회폭력을 엄격히 규제하여 “국회를 선진화 한다”는 취지로 마련되었다.

그리하여, 이 법은 비상시를 제외한 평상시에 교섭단체대표와 합의한 경우 이외에는 쟁점이 되는 법안의 직권상정을 봉쇄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국회 선진화’ 법의 핵심 내용은 쟁점이 되는 법안에 대해 조정을 하도록 하며(안건조정제), 특정 법안을 다른 안건보다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도록 하는 것(신속안건처리제)이다.

 그 요건은 국회법 85조 2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국회 상임위원 또는 전체 국회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으로 가결하는 안건만 의장이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해서 입법절차를 밟도록” 하는 것이다. 이 규정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제한하고 여야 간의 합의를 “강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합의 “강제” 규정은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 그중 하나가 여당이 공익을 위해 시급하고  중요한 입법을 추진하려 하는데 야당이 당파의 이익을 노린 ‘알박기 입법’을 하고 여당의 법안처리와 연계시킬 경우 큰 폐단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국회선진화법은 야당과의 타협을 위해 여당이 양보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공익이나 국익을 해치기 때문이다.  

둘째, 국회선진화법은 민주적 의사결정방식인 다수결 원리에 위배되는 법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리 헌법도 49조에서 다수결 원리를 규정하고 있으나, 국회선진화법은 상정 요건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다수결원리를 근원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국회선진화법의 일부 규정은 논리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의결정족수 요건은 과반수(1/2이상)로 하고 있는데, 의결을 위한 절차를 밟는 요건은 신속처리라는 명분아래 3/5이상의 찬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신속안건처리제의 논리대로 한다면, 대통령을 탄핵할 경우 소추는 과반수로 하도록 하되 발의는 2/3이상으로 해야 한다는 것과 같다.

셋째, 국회선진화법은 또한 다수의 지배라는 대의민주주의 운영 원칙에 반한다. 대의민주주의는 국민이 선거를 통해 선택한 국민의 대표와 정당이 일정한 임기 동안 집권하는 ‘다수의 지배’를 특징으로 한다. 대한민국은 대의민주주의를 토대로 삼아 정부형태를 대통령중심제를 택하고 있다. 따라서 다수의 지배라는 원칙은 대한민국 정부 구성과 운영의 핵심이 되는 원칙이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에서 다수가 아닌 소수의 지배를 보장하여 다수의 지배라는 대의민주주의 원칙을 위배하고 있다. 그 결과, 국회선진화법은 총선에서 나타난 국민의 의사를 왜곡하고, 지배는 소수파가 하고 책임은 다수파가 지도록 함으로써 책임정치를 훼손시키고 있다.

 국회선진화법 제정으로 법안 처리가 효율적이었고 국회폭력이 사라졌다는 주장도 있으나, 그것은 국회선진화법이 없더라도 민주주의 가치를 신봉하고 규범을 지켜야 할 국회의원들이 마땅히 해야 할 당연한 일에 불과하다. 

‘다수결의 원리’나 ‘다수의 지배 원칙’의 위배와 비교하면 구우일모(九牛一毛)에 불과한 장점으로 국회선진화법을 합리화할 수 없다. 

국회선진화법, 마땅히 개폐해야 한다. 잘못 된 것을 인정하는 데 용기가 필요하고 잘못된 것을 고치는 데는 더 큰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참된 정치인과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잘못된 국회선진화법을 바르게 개정하거나 폐기하는 용기 있는 모습을 보고자, 국민들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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