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제 불은초등학교장

 갈수록 증가하는 사회문제 중 하나인 교육문제의 근원은, 경쟁과 비교우위를 추구하는 물질중심 문화에서 비롯된다. 앞만 보고 달리기를 하는 삶은 행복할 수 없다. 온힘을 다해 달리면서도 앞선 사람을 따라잡지 못해 초조하고 뒤따라오는 사람에게 추월 당할까봐 항상 불안한 상황에서 어떻게 여유와 만족을 느끼며 나눔과 배려를 실천할 수 있겠는가.

주변 사람들 모두가 물리치고 이겨야할 경쟁 상대인 상황에서, 사람다운 사람을 기르는 일이 교육이고, 인성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아무리 외쳐댄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하는 생각이다.

논어(論語) 선진편(先進篇)에 나오는 공자와 제자들의 문답에서 교육의 바른 길을 찾아본다.

“옳은 말을 들으면 즉시 행해야 합니까?”
자로가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有父兄在(유부형재) 如之何其聞斯行之(여지하기문사행지)”, 부형이 있는데 어찌 네 판단만으로 행할 것이냐고 물으니, “좋은 일을 들으면 즉시 행해야 합니까”하고 답한다.

뒤이은 염유의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한다.

“聞斯行之(문사행지)”, 듣는 즉시 행하라는 것이다.

공서화가 같은 질문에 전혀 다른 답변을 하는 스승에게 의문을 제기하자 공자는 말한다.

“求也退故(구야퇴고) 進之(진지)”, 구(求:염유)는 소극적이니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라 한 것이고,“ 由也兼人故(유야겸인고) 退之(퇴지)”, 유(由:자로)는 지나치게 적극적이고 행동적이니 물러서게 한 것이다.

이처럼 때와 장소, 경우와 상대에 따라 스승의 가르침은 유연하고 적절했다. 소극적인 사람에게는 적극적인 실행을 권하고, 지나친 자에게는 참고 누르게 한 것이다. 자칫 동일한 질문에 상반된 대답으로 일관성을 잃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진정한 교육이 무엇인지, 그리고 교육이 추구해야할 방향을 깨닫게 한다.

사회란 생존경쟁의 장이 아니라, 서로 어울려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숲과 같은 것이다. 언덕과 골짜기, 절벽과 개천, 바위와 흙을 바탕으로, 크고 작은 갖가지 나무와 풀, 동물과 곤충, 이끼와 미생물까지 서로 어울리며 함께 생존하는 것이 아름답고 건강한 숲이다.

크고 강한 나무만 있는 숲은 존재할 수도 없지만, 설령 인위적으로 조성한다 해도 아름답거나 건강할 수 없다. 크고 곧게 자라는 나무는 목재로 사용할 때 가치가 있고, 작고 단단한 나무는 조각이나 공예품을 만드는데, 구부러진 나무는 관상수로 사용될 때 빛을 발한다.

이름 모를 풀벌레도 청소부 역할을 하고, 숲을 건강하게 만드는 자양분이 된다. 온갖 짐승과 새, 심지어 바람마저도 서로 스치고 어울리며 상생의 화음을 만들어 낸다.

오늘날 교육문제의 근원은 모두가 눈에 잘 띠는 크고 강한 나무만을 선호하는데 있다. 그 결과 가정은 물론, 학교에서도 경쟁을 부추기고, 비교 우위에 매달리며 학생들을 몰아세우고 있다.

작금의 교육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고, 무엇을 위한 것인가? 친구들과 경쟁에서 이기고 살아남도록 강요받는 이기적인 풍토 속에서, 과연 학생들은 어떤 인성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할 것인가.

모두가 주장하는 인성교육의 중요성이, 감동 없는 미사여구처럼 공허한 외침이 되지 않으려면, 경쟁과 비교에서 탈피하는 인식 전환이 선행되어야 한다. 각자의 개성과 소질을 고려하고, 환경과 여건에 따라 유연하고 적절한 교육과 진로지도가, 행복한 학창생활과 미래를 가져다준다. 그것이 오늘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고, 진정한 교육 목적을 추구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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