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기 인천대 외래교수

 인간에게 불안은 숙명이다. 존재하지 않는 미래는 항상 인간의 통제 범위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전염병도 질병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감염되는 시점과 장소를 모르기에 두려운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측이 어려운 사회는 그만큼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이미 한국 사회는 다양한 불안의 징후들이 빈번하게 목격되고 있다. 한국은 OECD국가 가운데 10년 연속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출산율과 삶의 만족도는 세계 최하위다. 한편 알콜과 도박, 마약 중독률 또한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으며 각종 투서와 악성 루머가 만연하고 악의적인 모함이 비일비재하다.

무고죄로 기소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일본에 비해 우리는 무고죄로 구속되는 사람이 한 해 수천 명에 이른다. 고소와 고발 건수 역시 일본의 수십 배가 넘는다. 문제는 그래서 불안한 것이 아니라 불안하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에는 시기와 질투심 이외에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불신도 팽팽하게 작용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치열한 욕망과 거친 경쟁 속에서 불안은 증폭되고 두려움은 더욱더 확대된다. 메르스 사태도 사실상 크게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정부의 초기 대응에 대한 실패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측면도 있었다. 그렇지만 전국이 필요 이상 공포에 떨었던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서늘한 불안의 그늘 때문이었다. 실제로 공포와 두려움은 그 느낌의 요인이 다르다.

두려움은 위협의 실체가 구체적일 때 유발되지만 공포는 그 실체가 모호하거나 불분명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공포 영화의 진수가 가해자가 등장하는 시간과 장소를 불특정하고 불규칙하게 배치하여 피해자의 불안감과 관객의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데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두려움에서 오는 불안보다 대응이 어려운 공포감에서 오는 불안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훨씬 크고 강력하다.

메르스에 대한 공포가 불안을 유발시킨 측면도 있지만 실제로는 우리 사회의 근원적이고 구조적인 불안이 이 전염병 사태에 대한 공포감을 확대시킨 측면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사회적 불안이든 개인적 불안이든 불안은 개인의 짙고 강렬한 욕망 이외에 탈법과 반칙에 대한 강한 의구심과 불신과 배신에 대한 깊은 경계심에서 비롯된다. 결국 이러한 불안을 극복하는 길은 예측 가능하고 믿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신뢰는 법치로 확보되고 상식으로 유지된다. 법치와 상식이 제멋대로 흔들리고 휘둘리는 상황에서 미래를 담보한 삶을 추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근대적인 인성 교육에 앞서 법치 교육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성교육은 지배 계급인 사(士) 계급이 농공상 계급을 통치하고 관리하는데 필요한 성리학적 세계관에 근거한 교육이었다. 이러한 교육은 소수의 엘리트가 기득권을 모두 장악하고 다수 위에 군림하는 불평등한 사회를 조장하는 결과를 만든다.

여기에서 편법과 불법이 기승을 부리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이로 인해 건전한 경쟁은 와해되고 앞날은 예측 불허의 안개 속에 갇히게 된다. 개인의 사생활과 국가의 안보와 이익에 관계되는 것 이외의 모든 사안은 투명해야 한다. 의혹은 불신을 낳고 불신은 불안을 양산하기 때문이다.

연줄의 횡포가 횡횡한 채 담합과 공모가 일상화되고 뇌물과 청탁이 습관화한 사회에 믿음이 있을 리 없다. 끼리끼리 다 해먹는다는 불만과 공정성에 대한 의심은 불신으로 내재화되고 그 결과 불안은 심화되고 확대된다. 앞으로도 개인과 사회의 불안감을 자극하는 상황은 지속적으로 반복될 것이다.

 그런데 위기가 불안감을 촉발시키는 경우보다 불안이 위기를 증폭시키는 사회가 더 위험 사회이다. 따라서 위기를 감지하고 방어하고 극복하는 행태만큼 불안을 최소화하고 관리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당장 불편하고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법치는 신뢰 조성의 가장 우선적인 조건이다. 불안은 자신이 자신의 미래에 대비가 가능하다는 확신을 통해서 약화되거나 해소된다. 결국 예측 가능한 사회란 신뢰가 숨쉬고 법치가 공정하게 작용하는 사회다. 불안은 숨기고 가리고 은폐하는 것들을 먹고 산다. 공적 규범에 대한 믿음이 확보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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