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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른에 비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덜 성숙하며 세상에 대한 경험도 적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세상이란 언제나 궁금한 곳이다. 꿈이나 미래라는 단어가 아이들에게 더 어울리는 까닭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꿈 혹은 호기심 앞에 선 아이들은 세상에 나가 깨지고 다치더라도 겁 없이 돌진한다. 그들에게 세상은 확률 게임이 아니다. 결과와 상관없이 일단 두드려 본다.

그러나 어른들의 시각은 다르다. 삶에 대한 나름의 노하우가 쌓인 시점에서 그들이 세상을 대해는 방식은 일종의 확률 싸움이다. 모험이 따르는 과제 앞에서 호기심만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그 일이 성공할 가능성과 실패할 확률을 파악한 후 행동한다. 때문에 앞뒤를 재지도 않고 불나방처럼 호기심만으로 행동하는 아이들은 어른들의 시각에서 걱정일 수밖에 없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400번의 구타’는 어른들의 시선에서 말썽과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 앙투안을 길들이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과연 앙투안은 어른들의 바람대로 성장할 수 있을까?

앙투안은 주변에서 문제아로 통한다. 무단결석과 거짓말 심지어 도둑질에도 손을 뻗는 앙투안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태생적으로 나쁜 유전자를 받고 태어난 것일까? 아니면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를 겪고 있기 때문일 걸까?

사실 알고 보면 앙투안은 외롭고 억울한 소년이었다. 그의 부모님은 자식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엄마도 새 아버지도 각자 자신의 삶에만 충실할 뿐, 앙투안과는 어떠한 감정적인 교류나 대화조차 나누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그는 소외되었다. 공부에 관심이 없는 앙투안은 학교 수업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중 수업시간에 몰래 돌려보던 야한 잡지가 마침 앙투안의 손에 들어왔을 때 선생님께 적발당하고, 운이 없던 앙투안만이 체벌을 받게 된다. 이후 학교에서 문제 학생으로 낙인 찍힌 앙투안은 억울한 누명과 편견, 그리고 그런 상황들이 빗어내는 어른들의 억압과 폭력 속에서 시름 하게 된다. 급기야 못된 아이 앙투안, 말썽꾸러기 앙투안은 교화원으로 이송되기에 이른다.

그는 이곳에서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자신의 우울한 과거를 상담사에게 털어놓는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 됐든 앙투안은 착한 아이로 길들여지기 위해 교화원에서 생활해야만 한다. 과연 그는 세상의 기준대로 교화될 수 있을까? 이 방법만이 앙투안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을까? 화면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앙투안의 복잡한 눈동자는 말로는 다 전하지 못한 다양한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영화 ‘400번의 구타’는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데뷔작으로 누벨바그의 서막을 올린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1959년 칸 국제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수상작에 빛나는 이 영화는, 10대 소년의 방황과 반항을 다룬 성장영화로 이를 억압하는 기성세대의 보수성과 틀에 박힌 제도를 비판하고 있다.

이 영화는 감독의 불우했던 유년시절을 모티브로 삼아 투영한 자전적인 성향이 주는 진실성과 앙투안을 연기 한 장 피에르 레오의 이미지가 훌륭하게 결합돼 경직된 사고가 약자에게 가하는 폭력적이고 부조리한 현실을 냉정하게 포착해 내고 있다.

작품의 제목인 ‘400번의 구타’는 프랑스 속담인 ‘400번의 매질이 아이를 어른으로 만든다’에서 유래하는데, 사실 이 속담은 트뤼포 감독이 가장 싫어했던 표현이기도 한 만큼 그 의미는 역설적으로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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