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바라보게 하는 것은 눈이지만, 꿈에 도달하게 해주는 것은 성실한 다리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은 뼈를 깎는 고통과 불행을 겪어봤을 것이다.

 고통과 불행이 닥쳤을 때 과연 얼마나 현명하게 헤쳐나가 자신의 남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을까?

 갓 20세를 넘은 한 청년이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을 쓸 수 없는 장애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좌절은 잠시, 새로운 도전으로 자신의 불행을 이겨가며 지금은 오히려 자신보다 더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이들을 돕기위해 또 다른 도전을 꿈꾸고 있는 ‘무한도전자’가 있다.

 주인공은 바로 ‘1급 장애’로 평생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불행에도 굴하지 않고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며, 한 가지도 어려운 의사·변호사 자격을 모두 가지고 있는 박성민(31)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전공의(레지던트)다.

 박 전공의는 "도전은 남들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나는 할 수 있다’고 자기최면을 걸고 또 걸어 결국 이루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편집자 주>

 #엔지니어에서 의사로의 길로

 인천 계양구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계양초·중·고교를 거치며 수재(秀才)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공부에 탁월’한 재주가 있었고, 2003년 대학 입학 당시 엔지니어가 목표였던 꿈을 찾아 한국에서 인재들만 모인다는 카이스트와 서울대 공대에 동시 합격, 카이스트로 진로를 선택했다.

 하지만 엔지니어의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카이스트에서 홀몸노인 봉사활동을 나갔을 때입니다. 그곳에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홀로 외로이 마지막 삶을 살고 있는 한 할머니를 돌보던 중 생각지도 못하게 할머니의 마지막 임종까지 지켜주게 됐고, 진로변경을 결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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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는 세상과 마지막 작별을 하는 할머니의 마지막 눈빛이 아른거려 한참을 울었다.

 슬픔의 끝에 무엇인가가 심장을 울렸고, 비로소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이 명확해졌다. 그해 인하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진로를 바꾸면서 자신의 꿈을 찾아 험난한 도전이 시작됐다.

 

 #불의의 사고 그리고 1급 장애와 변호사의 꿈

 지난 2005년 2월 2일은 그의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하면서 가장 빨리 지우고 싶은 날이다.

 그날 자신이 공부하던 인하대 부속병원으로부터 ‘1급 장애’ 판정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 결과를 받았다.

 2년간의 의대 예과 공부를 마친 그는 겨울방학을 맞아 친구들과 강원도 평창의 한 스키장으로 힐링을 위한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스키여행이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마지막 여행이었다.

 "야간 스키를 타던 중 그만 낙상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균형을 잃고 허리부터 땅으로 떨어졌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학교(인하대병원)에 학생이 아닌 환자로 와 있었습니다."

 수술 후 한 달 동안은 휠체어조차 타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기만 했다.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소용없이 결국 하반신 마비(1급 장애) 판정이 난 건 멀지 않아서였다.

 "암담했죠. ‘이젠 모두 끝났구나’ 했어요. 하지만 친구들과 부모님, 교수님들이 저에게 용기를 줬어요."

 병원에 있는 동안 지도교수들이 수시로 병실을 찾아왔고, 친구들은 그의 얼굴을 그린 티셔츠를 만들어 판매한 돈을 내밀며 병원비에 보태라고 했다.

 무엇보다 농사일도 미루고 병실을 지키는 부모님을 보면서 그는 다시 용기를 냈다.

 그러나 병상에서 꼬박 1년을 보내고 휠체어를 타고 돌아온 학교는 가혹한 현실로 다가왔다.

 휠체어를 타고 의학 공부를 하며 졸업까지는 너무 힘들고 고된 나날들이었지만, 장애를 핑계로 남들에게 뒤처질 수 없다는 의지로 하루 20시간을 공부에 매진했다.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은 물론 교수들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고, 노력의 결과는 4학년 1학기에 받은 인하대 의대 전체 차석이라는 성적표로 돌아왔다.

 의대 4년을 보낸 그는 자신이 처한 현실의 한계를 느낄 때쯤 주변에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친구를 만나게 되며 또 다른 전환점을 맞는다.

 "자연스럽게 사시 준비생 무리에 흡수되면서 의사보다 변호사가 적합하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도전은 시작됐다. 빠듯한 시간을 쪼개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법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의료 소송에 휘말린 환자와 의사들을 위해 의료 지식을 갖춘 법조인이라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서울대학교 로스쿨에 도전장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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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그의 도전은 2010년 2월 서울대 로스쿨 특별전형 합격 소식으로 실현됐다. 2년간 관악산 자락에 위치한 서울대를 휠체어로 누비며 법학 공부를 어렵게 마치고 변호사가 된 그는 자신의 전공을 충분히 살린 의료소송 쪽으로 변호를 맡으며 꿈을 찾아갔다.

 

 #다시 찾은 병원, 또 다른 미래만들기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였던 그는 법률적이라기보다 의학적인 부분에 대한 쟁점을 주로 다룬 탓에 진료기록부와 항상 싸움을 해야 했다.

 변호사의 길을 가도 의사로 다시 연결되면서 자신의 종착역을 생각하게 되고, 인생 방향이 항상 의학 쪽으로 이어지는 것을 깨달으며 다하지 못한 의사로서의 길을 다시 꿈꾼다.

 이에 그는 2013년 전문의의 꿈을 실현하고자 모교인 인하대병원에 인턴(전공의) 과정을 지원, 지난해 인턴과정을 수료한 후 올해 3월부터 직업환경의학과 전공의(레지던트) 1년 차로 근무하고 있다.

 현재 의사로서의 본업에 충실하고 있는 그의 마지막 도전은 ‘봉사’라고 한다. "레지던트 과정 마치고 나면 의사를 할지 변호사를 할지 결정해야 한다"는 박 전공의는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봉사에 발휘하는 것"이라며 "의지할 데 없는 사회적 약자 곁을 찾아가 의사와 변호사가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펼치는 것이 나의 마지막 도전이 될 것"이라고 진정한 도전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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