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도시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찰스 랜드리(Charles Landry)가 한 말이다.

 그가 처음으로 사용한 개념인 창조도시는 ‘살아 있는 예술 작품과 같은 도시’를 일컫는다. 시민 스스로 창의력을 발휘해 빚은 창조적인 도시를 뜻한다.

 그러나 도시의 현주소는 ‘창조적’이란 단어와 거리가 멀다. 그는 저서 「크리에이티브 시티 ∼메이킹」을 통해 "너무나 많은 도시들이 같은 모습,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다"며 도시의 획일화된 모습을 짚었다. 많은 도시가 그들만의 문화적 차별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는 도시가 새로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다른 도시와 구별되는 독특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인천시가 추진하는 ‘가치 재창조’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인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인천만의 가치 찾기가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천은 고인돌에서 개항장까지 최초·최고(最古)의 역사가 가득한 ‘역사문화의 보고’이자 공항과 항만을 갖춘 ‘대한민국의 관문’으로 통한다. 이러한 인천이 가치 재창조에 돌입했다. 인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담아낼 수 있는 가치를 찾고 새롭게 정비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인천 최고 역사 발굴’, ‘인천 인물 찾기’, ‘섬 프로젝트 추진’ 등 3가지 코스로 진행되는 여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코스=우리나라 최초·인천 최고 역사 발굴

 ‘미추홀 2030년, 인천의 역사를 되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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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코스는 우리나라 최초, 인천 최고(最古) 역사를 발굴하는 코스로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먼저 인천 지명의 유래부터 알아보자. 인천의 역사는 고구려 주몽의 아들 비류가 ‘미추홀(彌鄒忽)’을 세운 것에서 시작됐다. 삼국시대 때 고구려의 영토가 된 뒤로는 매소홀현(買召忽縣)으로 불리다 다시 신라의 영토가 됐고 경덕왕이 소성(邵城)이라 이름 지었다.

 고려 시대에는 경원군(慶源郡), 인주(仁州), 경원부(慶源府)로 승격됐지만 조선 시대 때 태종이 고을 사이의 서열을 정비하면서 인천(仁川)이란 오늘날의 이름을 얻게 됐다.

 인천은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거치면서 외세와 직접 대면하는 곳이 됐다. 1882년 제물포 조약 이후 6년이 지나 제물포가 개항됐고 청나라와 일본, 서양 여러 나라의 영사관이 제물포에 들어서게 됐다.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인천은 일제 식민 통치의 중요한 항구가 됐다. 중일전쟁 이후에는 계속되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군수산업 단지의 역할을 담당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제국이 패망하자 미군이 인천을 통해 상륙했다. 1950년 9월 15일 있었던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의 국면을 크게 전환한 역사적 사건이 됐다. 수세에 밀렸던 대한민국은 이 작전을 계기로 공세로 전환해 북진할 수 있었다. 이어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면서 인천은 수도권의 주요 수출입 항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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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인천 개항을 통해 새로운 문물이 도입되면서 인천의 최초 역사가 쓰이기 시작했다. 한국 최초의 개신교 교회와 초등학교가 들어섰고 교통과 통신 설비가 세워졌으며 새로운 문화와 산업이 형성됐다.

 인천의 최초 역사는 다음과 같다.

 인천에 진출한 최초의 무역상인 영국계 이화양행은 1883년 6월 제물포에 진출해 지사를 설립하고 화물운송, 우피무역, 광산개발 등에 주력했다. 개항과 함께 인천항에 몰려온 외국 무역 상사들 가운데 최초로 양관을 지은 나라는 독일계 세창양행으로 1883년 함부르크에서 온 세 명의 사원을 위해 맥아더 장군 동상 일대에 기숙사 건물을 지었다.

 1884년 11월 18일에는 서울의 우정총국과 인천분국이 개설되면서 근대식 우편 제도가 시작됐고, 이 인천분국이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 우체국이 됐다.

 인천을 대표하는 공원 중 하나인 자유공원은 1888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고의 서양식 공원이다. 응봉산 또는 응암산이라 불리는 자그마한 동산 위에 자리 잡은 이 공원은 처음 만들어질 당시 각국공원이라 불렸다.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는 인천에 한국 감리교 최초의 예배당인 내리교회를 건축했다. 이 예배당은 1891년 11월에 완공됐는데 겉에는 석회를 발랐고 지붕은 일본식 기와를 얹었다. 방은 두 개였고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다. 33㎡ 넘는 집에 방 두 개를 넣었기 때문에 예배를 보는 큰방은 기껏 20㎡를 넘지 못했고 설교자를 제외한 성인 12명 정도 앉을 수 있는 규모였다.

 경인선은 한국 최초의 철도다. 1897년 3월 27일 인천 우각현(쇠뿔고개, 오늘날 도원고개)에서 기공식을 거행했고 공사에 착수한 뒤 1899년 9월 18일 인천역~노량진역 33㎞ 구간이 개통됐다. 당시 개통된 역은 인천~축현~우각동~부평~소사~오류동~노량진 등 7개 역이었다.

 우리나라 야구 도입에 있어서도 인천은 최초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05년 미국인 선교사 필립 L. 질레트(Phillip L. Gillette)에 의해서라고 한다. 그는 황성기독교청년단 회원들에게 타구 또는 격구라는 이름으로 야구를 가르쳤다고 한다. 이어 1906년 2월 11일 황성기독교청년단과 독일어학교팀이 야구경기를 했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야구 경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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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구 전동 25번지에 자리 잡은 인천기상대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기상 관측이 이뤄지던 중앙기상대였다. 1905년부터 1953년까지 국내는 물론 세계 각지의 기상 정보를 수신해 그날그날의 기상을 분석·예고하던 기상 업무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박물관인 인천시립박물관은 1946년 4월 1일 정식 개관됐다. 개관 이후 인천시립박물관은 1947년 5월 10일 서울의 김두승이 소장하던 신라 시대 석불상을 기증받는 등 각계로부터 유물을 기증받아 소장 유물을 계속 확충해 나갔다. 인천시립박물관은 경서동 녹청자 도요지 발굴로 발굴·답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1965년 11월 15일부터 1966년 5월 7일에 이르기까지 4차에 걸쳐 경서동 녹청자 도요지 발굴을 실시했고 이는 국가 지정 문화재 사적 제211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시는 이 같은 인천의 주요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한국 최초, 인천 최고’ 책자를 발간할 계획이다. 특히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문화유산을 대상으로 스토리텔링을 거쳐 체계적으로 정리, 인천 역사 홍보에 나설 방침이다.

 또 인천시민들이 문화시민으로서 자긍심을 갖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근대문화 최초의 공간, 개항장(중·동구) ▶인천 역사의 원류, 전통문화의 출발지(남구) ▶과거와 미래가 융합된 도시(연수·남동구) ▶전통문화와 근현대사가 공존하는 지역(부평·계양·서구) ▶서해안 해양문화의 원형(강화·옹진군) 등 5개 권역별 역사문화 탐방단을 운영하기로 했다.

 시는 이처럼 인천만이 지니고 있는 한국 최초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역사와 문화, 소중한 가치 등을 발현시켜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문화유산을 대상으로 스토리텔링을 거쳐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 책자를 발간, 인천이 가진 소중한 가치를 널리 알리기로 했다.

▶2코스=인천 인물 찾기

 ‘인천의 미래는 사람에 달려있다.’

 인천의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제2코스로 ‘인천 인물 찾기’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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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인물 발굴을 통해 시는 각계각층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인천 출신 인사들에게 ‘인천인’으로서의 소속감과 책임감, 사명감을 갖게 함으로써 이들이 향후 인천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시는 올해 2월부터 출생지, 학교, 직장, 연령에 구분 없이 인천 연고가 있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물 발굴 작업에 들어갔다.

 인천 인물에는 각종 위원회, 전국 인천 향우회, 초·중·고·대학 동문회, 중앙부처 산하 기관장·임원, 국가 공사·공단의 장·임원, 인천 출신 중앙부처 고위 공무원, 인천시 전직 국장급 이상 공무원, 인천 출신 연예인, 문화예술인, 체육인 등이 포함된다.

 또 시는 인천 인물 간담회를 통해 적합한 인물을 찾고 있다. 첫 간담회는 지난 4월 인천 출신 및 인천의 대학교 총장을 초청한 자리로 꾸려졌다. 이날 간담회에는 인천지역 내 대학교 총장들과 인천발전연구원장, 인천 출신이면서 타 지역의 대학교에서 총장을 역임했거나 현재 총장으로 재직 중인 인사들이 참석해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6월에는 향우회 회장 모임을 가진 데 이어 7월에는 인천의 고등학교 학교장 및 동문회장과의 만남을 통해 인천 발전을 위한 허심탄회한 의견을 교환했다. 참석자들은 인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인천 발전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개진했으며 앞으로 인천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중심도시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서로의 생각들을 나눴다.

 시가 총 세 차례 실시한 인물 간담회 가운데 교육 관련 인물에 중점을 두는 이유는 교육이 우리 사회 모든 분야의 기초를 이루는 밑바탕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시가 현재까지 발굴한 인천 인물은 7천251명(6월 10일 기준)으로 기업인, 교육인, 법조인, 정치인, 방송예술인, 공무원, 체육인 등이 포함돼 있다. 시는 7월까지 선정 작업을 거쳐 핵심인물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핵심인물 규모는 500명에서 1천 명 사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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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울러 오는 9월까지 ‘인천 인물 관리·운영 조례’(가칭)를 제정해 인천 경쟁력의 한 축으로서 인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할 계획이다.

 시는 앞으로 체계적인 인력 관리를 위해 인천 인물을 대상으로 한 시정 현황과 시정 설명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이어 인천 출신 유명 인사의 인생관과 경험담을 들을 수 있는 강연회를 마련하고 각종 문화 예술행사와 스포츠 대회에 이들을 주요 내빈으로 초청해 ‘인천인’으로서의 소속감을 부여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인천 시정발전에 큰 공을 세우거나 사회적으로 이슈를 불러일으킨 인물에 대해서는 ‘올해의 인천인’으로 선정해 대내외적으로 홍보할 방침이다.

 ▶3코스=섬 프로젝트 추진

 ‘인천 섬은 인천 관광의 미래다.’

 인천에는 168개의 아름다운 섬이 있다. 지난 2012년 3월 CNN이 선정한 아름다운 섬 33선을 보면 인천의 섬 5곳이 포함돼 있다. 1위 선재도를 비롯해 6위 덕적도, 8위 강화도, 21위 백령도, 29위 팔미도 등이다.

 시는 천혜의 자연경관 등 섬만이 갖고 있는 지역 특성을 바탕으로 테마별 전략을 수립해 인천만의 특색 있는 섬 관광 인프라와 콘텐츠를 개발하기로 했다.

 이는 최근 새로운 관광에 대한 욕구가 늘어나고 육지와는 다른 감흥을 주는 섬 관광의 매력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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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관광은 국내 관광 전체의 50% 수준으로, 해수욕장, 낚시 등 전통적 강세분야와 함께 도보여행, 스킨스쿠버 등 신규 분야의 증가세가 뚜렷하다. 인천은 수도권 2천500만 시장이 근거리에 있고 세계 5대 갯벌과 뛰어난 자연경관,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서식지 등 역사와 문화 등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자산을 갖고 있다.

 그러나 천안함, 연평도 포격으로 인한 부정적인 시선이 있어 평화의 섬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지난 2014년 세월호 사태 이후 인천 연안도서 관광객이 전년 대비 20% 감소해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정책적 지원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또 섬 관광에 대한 분명한 마케팅 전략이 없고 지속 가능한 국내 마케팅 경쟁력 기반 마련이 부족하다는 분석도 있다.

 이뿐만 아니다. 섬 관광에 있어서 개선해야 할 문제가 또 있다. 바로 긴 이동시간과 비싼 교통비용에 비해 체류시간은 짧고 즐길 거리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섬 접근성 제고를 위한 여객선 운항 증편, 야간 운항 규제 완화, 여객선 운임 지원 등이 요구되고 있다.

 이에 따라 시는 ‘섬 프로젝트’를 통해 인천 섬만의 특수성과 생활, 문화 등을 고려한 전략을 마련, 섬 관광 경쟁력을 강화시키기로 했다. 현재 프로젝트 추진 준비는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유정복 인천시장은 섬이 가진 가치를 새롭게 창조하고 관광자원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3월 서해 최북단에 위치한 대청도, 소청도, 백령도를 찾았다. 이어 6월에는 옹진군 덕적면 일원의 덕적도, 문갑도, 굴업도를 찾았고 이제 단 한 차례 섬 방문만을 남겨두고 있다. 시는 총 3차례의 섬 방문을 마친 뒤에 섬 프로젝트 실행을 위한 관광자원 활성화 방안을 최종적으로 완성할 계획이다.

 시는 이처럼 ‘우리나라 최초·인천 최고 역사 발굴’, ‘인천 인물 찾기’, ‘섬 프로젝트 추진’ 등을 통해 인천의 가치를 재창조해 나가고 있다. 또 인천만이 갖고 있는 역사와 전통, 문화적 가치, 성장 잠재력을 활용해 미래 경쟁력을 키워 나가고 있다.

 유정복 시장은 "인천의 가치 재창조를 통한 인천의 정체성 확립은 인천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작업"이라며 "인천만이 갖고 있는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여 민선 6기 비전인 ‘인천의 꿈, 대한민국의 미래’를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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